반응형 한국사이야기80 세종대왕과 황희 정승 반대의 아이콘 황희와 세종대왕의 일화 1. 황희의 성격 - 우유부단 (優柔不斷 )한 황희? 황희 정승 하면 우유 부단한 성격을 지녔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이기의 [송고잡기]라는 책에 실려 있는 황희정승과 계집종들의 일화에서 볼수 있습니다. 아래는 [송고잡기]의 일화 중 일부분을 실어 놓은 것입니다. 하루는 계집종들이 서로 다투며 한동안 떠들썩하다가 한 계집종이 공이 앉은 걸상을 두들기며 하소연하였다. "아무개 종년이 나와 서로 다투어 이러저러한 잘못을 범하였으니, 몹시 간악합니다." 공이. "네 말이 옳다." 고 대답하고 책만 보고 있었다. 조금 뒤에 상대방 계집종이 또 와서 걸상을 두들기며 똑같은 하소연을 하였다. 공이 또, "네 말이 옳다." 고 대답하였을 뿐 돌아보지도 않았다. 마침 공의 조카가 옆.. 2023. 12. 5. 조선의 천재 건축가, 박자청 여러분 오늘은 조선전기, 건축가 박자청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박자청의 얼굴은 남아있지 않아 볼 수 없지만 그의 이야기는 조선왕조 실록에 남아 전해지고 있어요 끝까지 읽어봐 주세요. 1. 박자청의 생애 박자청은 고려 말 황희석의 하인에서 시작하여 조선의 개국공신이 된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그는 건축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조선의 수도 한양을 건설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박자청은 고려 말에 김사행을 따라 토목 관련 지식을 배웠습니다. 조선이 건국된 후에는 내시로 출사하여 태조 이성계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습니다. 박자청은 태종 2년(1402년)부터 공조·예조전서, 중군총제 겸 선공감사 등을 역임하면서 조선의 주요 건설 사업을 총괄했습니다. 특히 문묘, 제릉, .. 2023. 12. 4. 나라 밖 문화재 이야기 겸재 정선의 화첩: 한국의 보물이 독일을 거쳐 귀환하다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첫 번째 이야기 겸재정선화첩 1. 겸재 정선 화첩이 국외로 유출된 배경 한국의 미술 보물 중 하나인 『겸재 정선 화첩』은 1911년과 1925년에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한 독일인 신부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 1870~1956)에 의해 수집되었습니다. 베버 신부는 1927년에 쓴 『한국의 금강산에서 (In Den Diamantenbergen Koreas)』에서 8점의 그림 중 일부를 포함하여 화첩을 소개했습니다. 이후, 이 화첩은 독일의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소장되었습니다. 2. 국내 환수 과정 1973년, 유준영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가 베버 신부의 글을 통해 화첩을 발견하였습니다. 1975년에는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을 직접 방문하여 확인하고, 1991년.. 2023. 11. 26. 한국의 문화재를 지켜낸 , 간송 전형필 문화재 수집가이자 교육자, 간송 전형필 1. 간송 전형필의 생애와 업적 1.1 전형필의 생애 간송 전형필은 1906년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를 거치며 한국의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데 평생을 바친 인물입니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중요한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일제의 수탈로 한국의 문화재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가 수집한 문화재 중에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하여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신윤복의 화첩 등 한국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도 다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간송 전형필의 문화재 수집과 보존 활동은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크.. 2023. 11. 17. 효명세자의 문학적 재능 효명세자, 자신의 의지를 글과 시로 표현하다 오늘은 효명세자의 문학적 재능과 누이와의 우애가 담겨있는 편지글을 통해 문학적재능과 가족사랑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린시절부터 보였던 문학적 재능 효명세자는 조선 후기의 왕세자이자 문장가로, 그의 문학적 재능은 조선 역사상 손꼽히는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효명세자는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문학적 재능을 보였습니다. 6살 때에는 이미 한시를 지을 수 있었고, 10살 때에는 아버지 순조에게 한시를 지어 바치기도 했습니다. 효명세자의 문학적 재능은 어른이 되어서도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그는 한시, 시조, 가사, 소설 등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습니다. 효명세자의 문학 작품은 주로 현실 비판과 개혁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 조선 사회의 부.. 2023. 11. 16. 대한제국의 외교: 서로 다른 세계를 아우르다 자주국가로의 시작, 대한제국의 외교 대한제국의 외교는 서로 다른 세계를 아우르는 여정이었습니다. 1853년의 조선과 미국의 첫 만남에서부터 시작된 이 여정은 다양한 미국의 변화와 조선의 외교적 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1. 새로운 세계와 마주하다 1.1 1853년: 조선의 미국과의 첫 만남 조선이 처음으로 미국과 마주했던 1853년, 미국은 미지의 나라로 여겨졌습니다. 이 첫 만남은 두 나라 간의 문화적 차이를 강조했고, 이어진 1871년의 사건으로 인해 미국은 무지한 오랑캐로 변했습니다. 1.2 1871년: 무지한 오랑캐로 변한 미국 신미양요 이후, 미국은 조선을 강제로 개방하려 한 무지한 오랑캐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조선에게 새로운 국제 관계의 필요성을 일깨웠습니다. 2. 서양 국가와 첫 번.. 2023. 11. 13. 이전 1 ··· 4 5 6 7 8 9 10 ··· 1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