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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야기/인물이야기(고대~근현대)

한국의 문화재를 지켜낸 , 간송 전형필

푸름이j 2023. 11. 1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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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 수집가이자 교육자, 간송 전형필

 

 

1. 간송 전형필의 생애와 업적

 

전형필 선생
간송 전형필 선생 40세 때 모습, 한국학 중앙연구원

 

1.1 전형필의 생애

간송 전형필은 1906년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를 거치며 한국의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데 평생을 바친 인물입니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중요한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일제의 수탈로 한국의 문화재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가 수집한 문화재 중에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하여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신윤복의 화첩 등 한국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도 다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간송 전형필의 문화재 수집과 보존 활동은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는 한국 근현대 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2 전형필의 업적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를 거치며 한국의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데 평생을 바침

한국의 중요한 문화재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음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를 다수 소장

한국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를 다수 소장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

간송 전형필은 한국 문화의 ''을 지킨 인물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2. 전형필 선생이 지켜낸 귀중한 문화재,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이미지
훈민정음 해례본, 세종 28년(1446년), 국보 70호, 간송미술관 소장

 

간송 전형필 선생은 1940년대 초기에 이미 우리나라를 넘어 동북아시아에 이름이 알려진 대수장가였다. 간송은 김태준이라는 당시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주의 국문학자로부터 해례본의 실존 소식을 접한다. 당시 일제는 조선에서 발생하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발견은 일제로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간송은 문화적 민족주의의 대명사였고 김태준 역시 일제로서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사회주의자였다. 이 둘이 만난다는 것은 너무 눈에 띄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송은 위험을 무릅쓰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는 데 사활을 걸었다.

 

눈물겨운 노력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실체가 간송의 품으로 왔으며 비밀리에 지켜오다 해방 후 조선어학회 간부들을 불러 한글 연구를 위해 영인본을 만들며 세상에 공개된다. 이 실체는 우리의 언어가 인체 발음기관을 상형화한 사실을 정확히 알려주었다. 백성을 위해서 기획적으로 언어를 창제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일이며, 특히 발음기관을 본떠 만든 최초의 언어로 기록된다. 언어가 그 만든 목적과 유래, 사용법, 그리고 창제의 세계관을 동시에 밝히면서 제작된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진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196212월 해례본은 국보로 지정된다. 그리고 199710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다.

 

 

3. 간송미술관 소개

 

 

간송미술관 이미지
간송미술관 전경사진, 한국학 중앙연구원

 

 

간송미술관은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으로, 1938년 보화각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설립자는 전형필 선생으로, 그는 평생을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 힘쓴

민족문화의 큰 별이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 최초의 근대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했습니다. 박길룡은 간송의 뜻을 살려, 한국 고유의 건축 양식인

한옥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서양식 건축의 장점을 도입한 독특한 건축물을 완성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국보 23, 보물 170여 점 등 한국 문화재의 보고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간송 전형필 선생이 수집한 국보 104호인 아미타여래삼존불좌상은 고려 불교 조각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신선도, 몽유도원도, 금강산도등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들이 다수 소장되어 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1년에 단 두 번, 봄과 가을에 각각 2주일 동안만 일반에 공개됩니다. 이는 문화재의 보호와 연구를

최우선으로 하기 위함입니다. 간송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4.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다양한 소장품들

 

4.1 《훈민정음 해례본

1446년에 세종대왕이 편찬하고 발표한 한글 창제의 정본입니다. 1940년에 안동에서 발견되어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소장품 사진
훈민정음 해례본, 세종 28년(1446년), 국보 70호, 간송미술관 소장

 

 

4.2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고려시대의 청자로, 매와 구름을 상감한 병입니다. 매는 용의 상징이고, 구름은 천상의 상징이므로, 이 병은

용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국보 제6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운학문 매병 이미지
국보 제68호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간송미술관 소장

 

 

4.3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조선시대의 화가 신윤복이 그린 풍속화의 화첩입니다. 신윤복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풍속화가로,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이 화첩은 신윤복의 대표작 중 하나로, 국보 제13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신윤복 풍속도
신윤복 필 풍속도 화첩, 간송미술관 소장

 

 

4.4 《귀비호접

신사임당은 조선의 문인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시와 화술에 뛰어난 여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귀비호접(貴妃蝴蝶)은 신사임당의 8폭 초충도 중 하나로, 양귀비꽃과 호랑나비를 그린 작품입니다. 담백하고 안정적인 구도와 섬세하고 온화한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귀비호접 이미지
신사임당의 귀비호접 , 간송미술관 소장

 

4.5 《야장단련

간결한 표현이지만 대장간이 갖춰야 할 요소를 모두 갖추어 사실적입니다. 인물들이 쓰고 있는 두건은 뿔이 솟구쳐있는 특이한 모습인데, 신분을 상징하는 두건이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네명의 대장장이를 살펴보면 한명은 달궈진 쇠를 집게로 잡고, 두명은 망치를 이용하여 달궈진 쇠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 아이처럼 보이는 한명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있습니다. 두명의 대장장이가 망치로 두드린 쇠는 다시 옆쪽에 담겨진 물에 넣어 식힙니다. 김득신은 대장간에서 연장을 만드는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쇠를 녹이는 가마에 불을 함께 그렸고, 달궈진 쇠를 표현하기 위해 붉은 색으로 칠하여 대장간의 모습을 더욱 생동감있게 나타냈습니다.

옛날 조선시대 농기구나 무기 등 연장을 만드는 순서는 김득신의 <야장단련>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김득신의 풍속화
김득신의 야장단련 간송미술관 소장

 

 

 

마무리

간송전형필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통해 그가 지켜낸 문화재와 보물, 서화, 훈민정음등 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간송전형팔 선생은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고 전쟁과 고난속에서도 지켜낸 위대한 인물입니다.

 

간송전형필 선생이 지켜낸 문화재중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우리글이 사람의 구강구조 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고 전형필 선생이 없었다면 만나볼 수 조차 없었던 문화재에 대해 눈으로 보며 우리글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은 이 외에도 많은 국보와 보물, 그리고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등이 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한국의 미술과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미술관으로, 많은 관심과 방문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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