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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야기/고대~조선(인물과주제)

조선 시대, 한양(서울)의 구조

by 푸름이j 2023.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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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선시대 한양의 구조에 대해 살펴보려고 해요.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죠.

 

1. 전조후시 , 좌묘우사(左廟右社)의 원칙

-좌묘우사(左廟右社)

사직단을 궁궐의 우측에, 종묘를 좌측에 두는 고대의 도성 조영 원칙. 좌조우사.

고대 도성의 주요시설을 배치하는 원칙의 하나로 궁궐을 중심으로 곡식의신주와 토지의 신주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직단은 그 우측 즉, 서쪽에 두고, 왕실의 사당에 해당하는 종묘는 그 좌측 즉, 동쪽에 배치하는 것을 가리킨다.

 

왕이 보는 위치에서 사직단의 위치가 우측 ,  종묘의 위치가 동쪽이 되는 것이다.

 

좌묘우사를 나타낸 지도
한양도성도에 나타난 좌묘우사.

 

 

 

-전조후시(面朝後市)

면조후시(面朝後市)라고도 한다. 고대 도성의 주요시설을 배치하는 원칙의 하나로 궁궐을 중심으로 행정부서에 해당하는 조정(朝廷)은 그 전면에, 상품생산과 교역활동이 이루어지는 시장은 그 후면에 각각 설치하는 것을 가리킨다.

 

전조후시의 원칙이 통상적으로 적용되지 못한 이유

전조후시(면조후시)의 배치원칙은 역대의 도성에서 그다지 통용되지 않았다. 특히 궁궐을 도성의 중앙에 배치하는 경우

보다는 북쪽에 치우쳐 두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궁궐의 후면에 시장을 배치하는 것은 불합리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도성에서는 시장을 궁궐의 전면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 역시 도성의 입지는 조선시대의 한양 처럼 배산임수의 지형적인 조건을 선택하여 궁궐을 배치한 관계로 이러한 원칙을 그대로 준수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전조의 부분은 원칙을 따랐으나 시장은 궁궐의 동쪽 편에 치우쳐 종로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참고자료와 설명
한양 도성도 속의 전조후시

Tip! 알아 두면 쉬워요!

-좌묘 :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인 종묘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사 : 조선은 농경국가 이므로 왕이 곡식의 신과 토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에 나아가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사직대제를 지냈다.

-전조 : 앞에는 관청에 해당하는 건물을 둔다는 원칙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정(朝廷) : 아침조, 앞마당 정 자를 쓰는데, 조선시대, 근정전 앞마당에서 아침에 하루동안 해야 할

            업무를 보고하거나 왕의 명령을 받는데 이곳을 조정이라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관리들을

            조정대신이라 하였다.

참고이미지
근정전과 앞마당

 

2. 왕은 남면 하는 것이 원칙

남면지위(南面之位) 란 임금이 앉는 자리의 방향이 남향이었다는 데서, '임금의 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대에 제왕이 남쪽을 향해 앉아 신하를 접견하고 정무를 처리한 예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논어에는 공자가 "무위로 다스린 이는 순 임금이실 것이다. 대저 무엇을 하셨으리오. 몸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남면하셨을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주역에는 "성인이 남면하여 천하를 다스려서 밝은 곳을 향해 다스림은 여기에서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남면지위는 임금의 덕, , 즐거움 등을 상징하는 말로도 쓰였습니다. 예를 들어, 장자에는 "비록 남면하는 제왕의 즐거움이라도 이보다는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Tip!  알아두면 쉬워요! - 남면지위 한자풀이

(남녘 남): 남녘, 남으로 향하다, 임금, 남이(南夷)의 무악(舞樂), 군주.

(낯 면): , , , , .

(갈 지): 가다, 변하여 가다, 이용하다, 끼치다, 걸어가다.

(자리 위): 자리, 자리잡다, 높여서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 자리를 정함, 사람이나 물건이 있어야 할 장소.

 

 

참고이미지
경복궁 근정전의 어좌 - 남면해 있는 어좌

 

 

[내용 및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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