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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야기/고대~조선(인물과주제)

궁궐 안의 궁궐 “건청궁”

by 푸름이j 202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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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명성황후시해사건)의 현장 "건청궁"

 

여러분 오늘은 경복궁 안의 궁궐 “건청궁"에 대해 포스팅 해보려고 해요.

 

건청궁은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에 해당 하는 지역에 위치해 있는데요

지금 청와대와 국가기관의 건물이 들어선 자리가 바로 “경복궁 후원”입니다.

 

경복궁의 가장 안쪽에 단청(나무를 비바람과 병충해로부터 보호)을 하지 않은 궁궐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그곳이 바로 “건청궁”입니다.

 

건청궁은 큰 아픔을 간직한 공간인데요 바로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라 잘 알려진

을미사변(1895)이 있었던 장소입니다.

 

 

1. 경복궁 안내도와 건청궁의 위치

경복궁 안내도 이미지
경복궁안내도 건청궁 위치 안내

 

 

 

건청궁의 위치가 잘보이나요? 궁궐의 가장 뒤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복궁은 지금 일제강점기때 없어진 건물들을 복원하고 있다고 해요 지도에 보이는 흥복전, 소주방도 복원된 건물인데요  지금은 근정전 옆 계조당이라는 건물을 복원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2. 건청궁 (乾淸宮)

“건청궁, 맑은 하늘이 드리워진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건청궁은 1873년 고종이 조선왕조 역대 임금의 초상화를 보관하고 정치적 자립을 선언하기 위해 지은 궁궐입니다.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한 후 일제가 철거하고 미술관을 지었고, 2007년에 복원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습니다.

 

건청궁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된 저택과 유사한 형식으로, 장안당, 곤녕합, 복수당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뜰에는 고종이 즐겨 먹었던 ‘고종시’ 감나무가 심어져 있어요.

 
 
 
일제강점기의 건청궁
건청궁의 일제 강점기모습

                                               

 

복원된 건청궁
건청궁의 현재 모습 - 복원된 건청궁

 

 

2. 장안당

장안당(長安堂)은 고종황제가 건청궁(乾淸宮) 내에 사비로 지은 침전입니다. 사대부의 저택과 유사한 사랑채와 안채로 구분된 건축 양식을 취하였으며, '오랫동안 평안하다’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왕실의 안식처로 사용되었습니다. 장안당은 정면 7칸, 측면 3칸, 7량의 규모로, 서쪽에는 누마루 형식의 추수부용루(秋水芙蓉樓)가 있습니다. 장안당에는 북행각과 동행각이 연결되어 있는데, 북행각은 1887년 미국의 에디슨 전기회사와 계약하여 한국 최초로 전등을 설치한 곳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당시, 고종은 이곳에서 일본군에 의해 감금되어 있었다가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복원된 장안당
건청궁 장안당

 

3. 곤녕합, 옥호루

곤녕합(坤寧閤)은 건청궁(乾淸宮) 내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거처하던 침전입니다. 곤녕(坤寧)은 '땅이 편안하다’는 뜻으로, 왕비의 덕성을 표현한 것으로, 중국 자금성(紫禁城)의 곤녕궁(坤寧宮)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곤녕합의 남쪽에는 2층 누각인 옥호루(玉壺樓)가 있는데 이곳은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일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비참하게 살해한 장소로 전해지는데, 그러나, 옥호루라는 명칭은 사실 옥곤루(玉壼樓)가 맞다는 주장이 있지요. 壼(곤)은 궁궐 내의 길이라는 뜻으로, 여성성을 나타내는 坤(곤)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명성황후가 남긴 필적에도 '玉壼’라는 글자가 보이며, 이는 『주역』 「곤괘」를 의식한 것으로 해석되어지고 있어요.

 

복원된 곤녕합과 옥호루
곤녕합 옥호루(명성황후 시해장소)

 

이곳을  직접 가보니 숙연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국모의 시해장소라서 그런 걸까요 슬퍼보이기도 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4. 명성황후 시해사건 – 을미사변   

을미사변은 1895108일 새벽에 일어난 조선의 명성황후 민씨를 암살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배후에는 일본의 공권력과 친일파가 있었으며, 명성황후는 건청궁 곤녕합에서 일본인 낭인들에게 칼로 찔려 죽었고, 시신은 석유로 불태워 연못에 버렸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자 하는 의도와 러시아와의 갈등을 반영한 것으로, 조선의 국권과 독립을 위해 싸우던 을미의병과 아관파천 등의 운동을 촉발시켰습니다.

 

을미사변은 당시의 명칭으로는 을미의 변이나 을미 팔월의 변이라고 불렸으며, 일본의 작전명으로는 여우사냥이라고 불렸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서양 각국에도 알려져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책임을 돌리려 했지만, 명성황후가 남긴 필적이나 목격자들의 증언 등으로 범인이 일본인임이 밝혀졌습니다.

 

을미사변은 조선 왕실과 국민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준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명성황후는 조선의 국권과 독립을 수호하려 했던 고귀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5. 을미사변을 다룬 영화, 드라마

 
KBS 드라마 명성황후”  -어린시절 : 문근영 -중년시절 : 이미연 -장년시절 : 최명길
 
명성황후를 연기한 배우들
KBS드라마 명성황후의 주인공들
 

② 영화 “한반도” - 강수연

배우 강수연
영화 "한반도" 명성황후 역의 강수연

 

③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 수애

배우 수애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명성황후 역의 수애

 

 
[사진, 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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