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운현궁 이야기
1. 운현궁(雲峴宮)의 소개와 역사
1.1 소개
운현궁은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의 저택으로, 고종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1.2 역사
-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역할
- 흥선대원군은 1864년부터 1873년까지 국정을 이끌었고, 내정에서는 유교의 위민정치를 내세워 전제왕권을 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 동학과 천주교를 탄압하고, 남북인사를 채용하며 동서양 간의 균형을 추구했다.
- 흥선대원군의 말년과 죽음
- 1895년말 법으로 행동을 제약받아 유폐생활을 강요받았다.
- 1898년, 운현궁에서 은퇴 후 죽음을 맞이했으며, 부인 여흥부대부인의 죽음 후 말년을 보냈다.
1.3 후손들의 논란
- 흥선대원군은 명성황후와 민씨 일족 및 고종을 폐출하고 완흥군 등을 조선 군주로 세우려 한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 그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 천주교도 대량 학살, 경복궁 중건 등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1.4 흥선대원군의 죽음
- 1898년 1월, 운현궁 별장에서 부인의 죽음을 목격한 후 자신도 쇠약하여 이곳에서 타계하였다.
2. 운현궁의 구성
2.1 구성
1) 노안당
정치적인 공간으로 활용되었던 건물로, 대원군의 국정 의논이 이루어졌던 장소이다.
남쪽에는 영화루로 불리는 손님을 접대하던 장소가 있다.
2) 노락당
규모가 크고 중심적인 건물로, 대청, 안마당 등을 포함하여 대원군의 생활이 이루어졌던 중요한 장소이다.
명성황후 민씨의 왕비수업과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있었던 곳이다.
3) 이로당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건물로, 대원군의 부인이 거처한 곳으로 전면 출입문이 내부로 향해있어 외부와의 접촉을 피했다.
2.2 운현궁 양관
- 운현궁에서 유일한 서양식 건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황실 인사를 회유하기 위해 건축되었다.
- 현재는 문화재로 보존되어 있으며, 드라마 촬영지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3. 운현궁의 현재와 미래
- 현재는 운현궁 일부가 중앙문화센터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건물들은 복원되어 국보 제257호로 지정되었다.
- 덕성여자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으로 사용 중인 운현궁 양관은 문화재 보존을 위해 비워둔 상태로 남아있다.
결론
운현궁은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역사가 새겨진 곳으로, 그들의 삶과 정치적 행보를 통해 조선시대의 정치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다. 현재는 문화재로 보존되어 우리에게 그 시대의 숨결을 전하고 있다.
728x90
반응형
'한국사이야기 > 인물이야기(고대~근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의 여장부, 정희왕후 (257) | 2023.12.30 |
---|---|
근대화를 꿈꾼 개혁 군주, 고종 (334) | 2023.12.24 |
조선의 국가안보 초석다지다, 세종의 외교와 군사정책 (143) | 2023.12.13 |
세종과 장영실: 한국의 과학 발전을 이끈 위대한 두 인물 (388) | 2023.12.09 |
세종대왕과 황희 정승 (423) | 2023.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