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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단 , 대한제국의 찬란했던 꿈 본문

한국사이야기/근현대(인물과 유적지)

환구단 , 대한제국의 찬란했던 꿈

푸름이j 2024. 2. 1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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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한구단
현재의 환구단 모습

 

 

 

 대한제국의 수립과 환구단 건립

 

대한제국 산 역사이자 환구단은 대한제국과 함께 했던 건축물 입니다.대한제국 수립과 환구단의 건립

은 중국과 일본 등 열강등로 부터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국이자 동시에 황제국으로서의 위상을 알리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 이었습니다.  대한제국의 수립과 환구단 건립이 갖는 의미와 역사적 상황, 당시

환구단 건축 이야기들을 보시면서  학창시절 배웠던 한국사를 다시한번 되새겨 보시는

소중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대한제국 수립과 환구단의 역사적 의미

1.1. 시대적 상황: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서세동점의 격변 속에서 자국의 정체성 확립과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고자 했습니다.

청나라의 간섭과 일본의 침략에 맞서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갑오개혁(1895)을 통해 근대적인 국가 체제를 도입하고 있었습니다.

 

1.2. 대한제국 출범과 환구단의 상징적 의미:

1897년 고종황제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개칭하고 황제로 즉위하며 독립 국가임을 천명했습니다.

환구단은 황제 즉위식과 천제에 대한 제사를 거행하는 장소로서 대한제국의 출범을 국내외에 알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유교적 황제 관념에 입각하면서도 청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국임을 명확히 하고 황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대한제국의 상징물로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 환구단 건립, 독립 국가의 위상 구축

2.1. 건립 배경:

18971012일 고종황제는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과 천제에 대한 제사를 거행했습니다.

이는 유교적 황제 관념에 입각한 것이면서도, 대한제국이 청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국임을 명확히 하고 황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려는 시도를 보여주는 상징물이었습니다.

조선을 왕국에서 황제국으로 전환하려는 조치는 1894년 청일전쟁 이후 본격화되었습니다.

 

대한제국시기의 환구단 사진
대한제국기의 환구단

 

2.2. 황제국의 위상에 맞는 건축:

환구단은 위치, 건물 구조, 의례 등 모든 면에서 황제국의 위상에 맞도록 건축되었습니다.

경운궁 바로 앞 남별궁 터에 건립되었는데, 이는 중국과의 단절 및 독립국의 위상을 드러내는 의미를 지닙니다.

3단의 석축으로 이루어진 원형 제단, 황궁우(皇穹宇), 석고단(石鼓壇)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늘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습니다.

황궁우는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뒷받침해줄 하늘과 땅, 그리고 조상신의 신위를 보관하는 공간입니다.

석고단은 7개의 발톱을 가진 용을 조각하는 등 대한제국의 상징을 채택했습니다.

의례는 고종황제가 직접 주관하여 신중하게 진행되었으며, 대한제국의 위엄을 드러내는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환구단 전경사진
대한제국기의 원구단(제단) 전경사진

 

 

 

환구단 제단 사진
대한제국기의 제단 사진

 

 

환구단의 구조물 사진
왼쪽부터 순서대로 환구단의 정문 광선문, 석고각, 석고

 

 

 

2.3. 건축 과정:

18976월 착공하여 1012일 황제 즉위식에 맞춰 완공되었습니다.

최고 도편수 심의석이 설계를 맡았으며, 당시 최첨단 기술과 자재를 사용했습니다.

1900년에 1차 완성되었지만, 이후 1901년의 중수, 1903년의 주변 정리를 거쳐 순차적으로 그 형태가 완성되었습니다.

 

 

3. 시대적 변화에 따른 환구단의 변천 과정

3.1. 대한제국의 흥망성쇠:

환구단은 대한제국의 상징적인 건축물로서 국가의 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1910년 한일 강제 병합으로 인해 환구단은 황폐해졌습니다.

일제는 환구단의 주변을 조선총독부 경찰청으로 사용하고, 철도호텔을 건설하기 위해 일부 시설을 철거했습니다.

 

3.2. 일제 강점기의 훼손과 복원:

일제는 환구단의 상징성을 없애기 위해 체계적으로 훼손했습니다.

1911년 환구단의 건물과 대지는 조선총독부 소관으로 이전되었고, 1913년부터 철도호텔 건설을 위해 일부 시설을 철거하기 시작했습니다.

1915년 철도호텔 개관 이후 환구단은 더욱 황폐해졌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환구단의 복원은 쉽지 않았습니다.

1967년 웨스틴조선호텔 건설 과정에서 환구단 일대가 다시 훼손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모습
일제 강점기의 환구단 전경

 

 

해방후의 모습
해방후의 환구단

 

 

3.3. 현재의 환구단:

현재 환구단은 황궁우와 석고단 일부만 남아 있으며, 사적 제157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습니다.

2009년 환구단 정문이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이전되었고, 2013년에는 환구단 일부 구역이 복원되었습니다.

현재 환구단은 대한제국의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를 향한 발전을 상징하는 장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의 환구단 사진
현재의 환구단

 

 

4. 환구단의 역사적 가치

환구단은 대한제국의 출범과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축물입니다.

근대화와 독립에 대한 대한제국의 열망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유교적 황제 관념과 정치 체제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침략과 훼손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장소입니다.

한국 근현대사 연구와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5. 결론

환구단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대한제국의 역사와 시대적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과거의 영광과 아픔을 기억하고 미래를 향한 발전을 위한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지속적인 보존과 연구를 통해 환구단의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고 활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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