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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국어사전이 탄생한 곳 , 조선어학회 본문

한국사이야기/근현대(인물과 유적지)

최초의 국어사전이 탄생한 곳 , 조선어학회

푸름이j 2024. 2. 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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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국어사전이 탄생하기까지 - 조선어학회

 

 

인트로 이미지
조선어학회 만화

 

 

한글 맞춤법 통일과 표준어 설정에 대한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한국어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이 글에서는 조선어학회의 설립 배경, 주요 활동, 업적, 사회적 영향, 그리고 조선어학회 사건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1. 조선어학회의 설립배경

1.1 조선어학회의 탄생

조선어학회는 일본의 강점기에 조선어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당시 일본은 조선어를 억압하고 일본어를 강요하여 조선인들의 언어와 문화를 위협했다. 이에 반발하여 조선어학회는 민족적 자존심을 고취시키고 독립 의지를 강화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1.2 학회 결성자

조선어학회는 주시경, 이희승, 김윤경 등 당시의 젊은 조선어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되었다. 이들은 조선어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학회를 창설했다.

 

조선어학회 임원 사진
조선어학회 회원들 사진 - 나무위키

2. 조선어학회의 활동 

2.1 한글 맞춤법 연구

조선어학회는 한글 맞춤법을 통일하기 위해 노력했다. 1933년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여,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한글 맞춤법의 기초를 마련했다.

 

2.2 표준어 연구

표준어의 연구와 보급을 위해 조선어학회는 노력했다. 1936년에는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발표하여, 서울말을 기반으로 한 표준어를 제시했다.

2.3 사전 편찬

조선어학회는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노력했다. 1940년에는 『조선어 사전』 초간을 발표하여 조선어의 어휘와 의미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3. 조선어 학회의 사회적 영향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조선어의 발전뿐만 아니라 민족 의식을 고취하고 독립 운동을 촉진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사용하는 조선어의 기반이 되고 있다.

 

4. 조선어 학회 사건

조선어학회 사건의 직접적인 발단이 된 것은 모종의 사건과 연루되어 1942년 9월 5일에 조선어학회 소속 한글학자인 정태진이 경찰의 취조를 받은 후 체포된 것이다. 그러나 정태진이 체포되기까지의 그 경위와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한 설에 의하면 함경남도 함흥에서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소속의 여학생 박영옥이 기차 안에서 일본어가 아닌 조선어로 대화하자 이를 눈치챈 친일 조선인 경찰관 '야스다(한국명: 안정묵)'가 즉시 체포하였다. 박영옥은 일본제국 경찰의 취조와 고문 끝에 조선어학회 소속 한글학자이자 서울에서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고 있다는 정태진이 그녀에게 민족정신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을 교육했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설이 있다. 일본 유학생 박병업이 검문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집에 일본제국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조사하고 있을 때 한 경찰이 박병업의 조카 박영희의 일기장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몇 장을 넘기자 “오늘은 학교에서 국어를 써서 혼이 났다.”고 적혀 있었다. 그 경찰이 이상하게 여기며 그때는 국어가 일본어였을 땐데 "왜 국어를 썼는데 혼이 났냐?"고 물으며 추궁을 시작하였다. 박영희는 "국어가 ‘조선어’인 줄 알고 그랬다"며 넘어가려 했지만 경찰의 고문과 추궁 끝에 조선어학회가 일본어를 배제하고 조선어를 몰래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참고로 이렇게 설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것은 해방 후 이희승, 정인승, 김윤경 등 조선어학회 관계자들이 각각 이 사건에 대한 회고록을 투고했을 때 내용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와 영생고등보통학교의 교장을 지냈던 김상필은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모아 진상을 검토한 결과 이희승의 회고가 가장 사실과 가깝다고 주장한 바 있으나 그렇다고 다른 회고록을 완전히 부정할 근거를 수집할 여력이 다들 없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주장이 경합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장신, 2016). 사건의 핵심이 되는 여학생의 이름이 '박영옥'인지 '박영희'인지 왔다갔다 하는 것에 대해서는 결론적으로는 '박영희'가 맞다. 이희승이 당시 회고록을 쓸 때 관련 여학생의 이름을 '백영옥'이라는 가명으로 처리했는데 나중에 이를 고치는 과정에서 '박영옥'으로 잘못 고쳤고 이를 다른 사람들이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체포된 정태진은 20여일간의 취조 끝에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단에서 여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을 했고 조선어학회가 민족주의자들의 집단체라고 시인했다. 일본 경찰은 조선어학회가 독립운동을 조장하는 단체라고 판단하고 1943년 4월까지 조선어학회에 관련된 총 33명의 한글학자들을 검거하였다.

 

학자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은 우리말 연구와 사전편찬에 신경을 쓴 것 외에는 독립운동에 가담한 적이 없다고 변론하였는데 검거된 33명 중 항일독립운동에 가담하거나 관련된 전적이 있는 14명이 치안유지법에 근거하여 '내란죄'를 죄명삼아 공판에 회부되었고 장현식은 무죄, 이 중 6명은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정태진은 만기복역 후 석방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4명만 남아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었다. 이윤재, 한징은 형무소 수감 중 옥사(獄死)하였으나 1945년 해방되면서 남은 학자들은 모두 석방되었다.

 

 

5. 8.15광복과 우리말 큰사전 창간

1945815, 8.15 광복과 함께 투옥됐던 한글학자들은 석방되었다. 당시 수감생활이 대단히 혹독했기 때문에 석방될 때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고 한다. 당시 함흥형무소에서 학자들이 석방되는 모습을 목격한 연세대학교 이근엽 명예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이극로, 최현배, 정인승, 이희승 4명이 풀려날 때 3명은 주위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 걸어 나왔고 나머지 1명은 아예 들것에 들려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이들은 조선어학회를 재건하고 국어사전 출간을 재개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던 중 사건 당시 압수된 후 행방불명이었던 초고 26,500여 장의 원고를 경성역(서울역) 조선운송 창고에서 찾아냈다.[7] 경성고등법원에 항소를 내면서 증거물로 서울로 이송되었다가 광복 3일 전인 8월 12일에 상고 기각 판결이 나면서 보관된 것.

 

되찾은 원고를 기초로 내용을 추가하고 수정한 끝에 1947년 한글날에 《조선말 큰사전》 1권을 을유문화사에서 출판하였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국어사전을 출판하게 된 이들의 감개가 담긴 서문은 지금 읽어도 뭉클해지는 명문. 우리말 큰사전 머리말 전문

 

우리말 큰사전은 표제어가 16만 4천 125개에 달하고 200자 원고지 2만 5천 900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당시 전국 8도의 순우리말과 한자어, 외래어, 관용어, 전문어, 옛말, 고유명사까지 포괄한 첫 종합사전이다. 또 음소부분의 발음과 문맥에 따른 사용처, 어휘구조까지 명기하여 학술적 가치가 대단히 높다. 지금은 한글학회 홈페이지에서 전자책 형태의 스캔본으로 볼 수 있다. 

 

1949년 조선어학회가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조선말 큰사전》에서 《우리말 큰사전》으로 이름을 바꾸어 3권까지 나왔으나 1950년 6.25 전쟁이 터지면서 큰사전의 출판은 다시 중단되었다. 전쟁통에 원고를 땅에 파묻고 피난을 가는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발간이 시작되었으며, 록펠러 재단으로부터의 지원이 막히기도 하는 등[9]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 끝에 1957년에 6권으로 마무리되었다. 완간까지 무려 28년이 걸린 인고의 결과물이었다.

 

이희승은 사건 당시의 수감 생활을 소재로 한 칠불당(七佛堂)이란 제목의 수필을 썼다. 이희승 특유의 유머 감각이 잘 살아 있는 수필로 칠불당이란 필자인 이희승 본인을 포함한 감방 수감자 7명을 부처님에 비유한 것이다. 처참한 수감 생활을 유머 있게 표현함으로서 반어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이 사건에 연루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일제에게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해방 이후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을 수여받거나 추서받았다. 즉 조선어학회 사건도 명실상부 국가 공인 독립운동이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사진
조선말 큰사전 원고

 

 

조선말 큰사전 창간본사진
조선말 큰사전 창간본

 

참고영상 - EBS역사채널e - 우리말글을 담다 조선말 큰사전

https://youtu.be/FIitapAm8E8

조선어학회 관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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