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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옥선과 거북선, 임진왜란의 승리를 이끈 조선의 강력한 전함 본문

한국사이야기/고대~조선(인물과주제)

판옥선과 거북선, 임진왜란의 승리를 이끈 조선의 강력한 전함

푸름이j 2024. 2. 9.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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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대첩기록화
한산대첩을 묘사한 민족기록화. 김형구 작 1975년./출처=위키백과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던 전함

 

판옥선 그림
조선 후기 각선도본에 그려진 판옥선.

1. 판옥선이란 무엇인가?

판옥선(板屋船)은 조선 시대의 군함으로, 조선 수군의 주력함이었다. 당시에는 전선(戰船), 판옥전선(板屋戰船)이라고도 불리었다. 총통과 신기전 등 화약 무기를 이용한 원거리 함포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1555(명종 10) 을묘왜변 직후 기존 전선인 맹선과 과선의 한계가 지적되었고, 이에 새로운 전선 개발의 필요성을 느껴 고려시대 주력 함선인 누전선을 개조하여 건조하였다. 최초 설계자는 당시 정극인의 5세손이자 전라남도 진도군 남도포 만호였던 정걸(丁傑, 1516-1597)[2]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사후에는 나대용 등이 전선 연구를 계승하였다.

 

판옥선의 '판옥'이란 널빤지(, ) 위에 올린 망루(, )나 장대를 의미한다. 즉 기존의 함선에 판(Plate)으로 한층 더 쌓고, 무관(武官)들의 지휘 및 전투용의 망루(Roof, Watchtower)를 올린 배라는 뜻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군함의 지휘관이 서 있는 누각이 바로 판옥이다.

 

2. 판옥선이 등장하게된 배경과 특징

 

2.1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해상 방어 상황:

왜구의 침략: 14세기 후반부터 왜구의 침략이 심화되어 해안 지역의 피해가 심각했습니다.

조선 수군의 약점: 조선 수군은 왜선보다 작고 속도가 느린 함선을 사용하여 효과적인 방어가 어려웠습니다.

새로운 함선 개발 필요: 왜구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함선 개발이 시급했습니다.

 

2.2 판옥선 개발의 계기:

을묘왜변(1555): 을묘왜변은 조선 수군의 약점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이순신의 건의: 이순신은 을묘왜변 이후 새로운 함선 개발을 건의했습니다.

판옥선 개발: 이순신의 건의를 받아 조정에서는 판옥선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2.3 판옥선의 특징:

거북선의 전신: 판옥선은 거북선의 전신으로, 널빤지로 지붕을 덮은 전투선입니다.

방어력 강화: 판옥선은 측면에 널빤지를 덧씌워 적의 공격을 막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화력 강화: 판옥선은 측면에 포를 설치하여 화력을 강화했습니다.

 

복원도
판옥선 3D 복원모형

 

3. 판옥선의 구조

 

구조를 보면 일단 네모진 통나무 15개를 이어 붙여 배밑을 만들고, 양현에 판재 7쪽 하나하나에 서양의 클링커 이음과 유사하게 턱을 따서 이를 짜맞춘 뒤 나무못을 박아 고정시켜 뱃전을 형성했다. 이물비우는 직판[6] 널빤지로 15쪽을 이어 붙이고 고물비우와 양현을 붙인 다음, 뱃전 위에 멍에를 걸고 그 위에 귀틀을 짜고 겻집을 깔아 1층 갑판을 만들었다. 노는 양쪽 뱃전에 있는 멍에 뺄목에 각각 9척씩 걸었다.

 

여기에 멍에 뺄목 위에 신방도리를 걸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 다음, 상장 위에 이물과 양쪽 뱃전을 따라가면서 여장이 상장의 언방 위에 뱃집 멍에를 걸고 널빤지를 깔아 2층 갑판을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일종의 지휘소인 장대와 이물돛대, 고물돛대가 있다. 이물돛대와 고물돛대는 뉘었다 세웠다 할 수 있게 장치가 되어 있었다. 고물꼬리에는 널판을 깔지 않고, 난간이 없이 비어 있다. 여기에 선미옥란을 설치해 대소변을 보거나 뭍에 오르내리게 할 수 있었다.

 

이처럼 갑판이 2중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요원인 격군(格軍)1층 갑판에서 안전하게 노를 저을 수 있고, 전투요원들은 2층 갑판에서 방해받지 않은 채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다.

 

4. 판옥선(평저선)과 첨저선의 차이

 

뒤에서 본 판옥선의 모형도
평저선과 첨저선의 모양 그림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의 판옥선이 왜군의 전함에 비해 강력한 전과를 올릴 수 있었던 큰 이유는 판옥선이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인 반면 왜군의 함대는 대부분 바닥이 V자인 첨저선이었다는 것에 기인한다.

 

평저선은 속도가 느린 대신 안정성이 뛰어나 파도에 강하고 선회력이 좋았다. 심지어는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이 가능했다. 반면 첨저선은 회전하기 위한 반경이 커서 한참을 돌아야만 회전이 가능했다.

 

그래서 왜군은 파도나 물살이 강한 곳에서 무리한 선회를 하다가 침몰하는 경우가 많았다.[21] 이순신 장군이 물살이 빠른 곳을 주로 활용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이런 평저선의 선회력을 이용하면, 한쪽에서는 발사를 다른 쪽에서는 장전을 하는 식으로 해서 상대방보다 훨씬 포를 빠르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학익진과 같은 진형을 구축하는 것도 360도 제자리 회전이 가능한 판옥선이 아니라면 매우 어려운 전술이다.

 

해전, 특히 함포전에서는 사실상 전함의 선회력이 전투력에서 가장 큰 비중을 담당한다. 당시의 전함은 좌우 측면에 함포를 달고 있기에 함포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함이 측면에 위치해야 한다. , 아무리 함포를 많이 달고 있는 전함이라고 해도 적군이 측면이 아닌 앞이나 뒤에 위치한다면 대포는 그냥 꿰다놓은 보릿자루 신세를 면치 못한다.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이 가능하여 곧바로 함포 공격을 할 수 있는 판옥선과 회전하기 위해 많은 공간이 필요한 왜선들과의 전투는 절대적으로 한쪽이 유리한 싸움이다.

 

또한 평저선은 첨저선에 비해 배 위에서 대포를 쏠 때 반동 흡수에 유리하여 명중률이 높았다. 반면 왜군의 전함들은 첨저선이라 흔들림이 심해 명중률이 형편없었으며 주로 삼나무를 사용해 만들어서 포탄의 반동에 함선이 손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판옥선에 대한 전투력을 알고자할 때 화포의 개수같은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평저선이라는 구조 자체에 있다. 임진왜란 때 괜히 이순신 장군이 백전백승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특히 판옥선 12척으로(게다가 전투 초반에는 대장선 혼자서) 적선 133척과 싸워 대승을 거뒀다는 말도 안되는 것 같은 전설이 가능한 이유도 이러한 전함 간 구조적 차이에 기인한다.

한편 이런 구조 차이가 일명 '명량 철쇄설'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5. 판옥선의 관련된 학설

보고서에 실린 도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보고서에 실린 도판 좌측은 기존 학설 , 우측은 새로운 학설.

 

기존에는 대부분의 한선들처럼 당연히 판옥선, 그리고 판옥선의 개조형인 거북선의 노는 노 하나에 노꾼 여럿이 붙어

자세로 8자를 그리며 뒤로 젓는 노를 사용했다는 것이 정설이었고, 이런 노 젓는 모습은 영화 명량에서 잘 재현되었다.

그러나 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판옥선의 노는 서양 갤리선의 노처럼 노꾼들이 앉은 자세로

옆으로 뻗어나온 노를 앞뒤로 왕복하며 저었을 것이라는 새로운 학설이 나온 것.

앉은 자세에서 옆으로 젓는 노는 서양식으로 생각되고 있지만 한선에서도 없던 것은 아니라고 하며, 옆으로 젓는 노의 경우 지구력은 서서 젓는 노보다 떨어지지만 순간 가속력이 좋아 기록에 나온 판옥선/거북선의 가속력을 설명하려면 옆으로 젓는 노가 타당하다는 것이다.

 

아래에 나온 것처럼 김세랑, 한호림 등 재야 연구가들의 주장과 비슷한 결과가 나온 것으로, 앞으로 학계의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내용이다. 특히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의 아들 '호러스 호턴 언더우드''한국의 배'라는 책에서 최초로 주장한 학설과도 같은데, 그동안 한국 학계에서는 언더우드의 연구 결과를 서양인이라 한선을 잘 몰라서 그런다고 폄하했지만 언더우드는 고종 때 실물 거북선, 판옥선을 본 사람이다.


조선수군의 전투함, 거북선

 

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된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삽화.

 

우리나라 전선의 구조와 형식은 주로 해적선과의 싸움을 통해 발전되었다. 고려 때부터 여진 해적이나 왜구와의 싸움에서 우리가 주로 사용한 전술은 배를 부딪쳐 해적선을 깨뜨리는 방법이나 화포를 사용하여 적선을 소각시키는 것이었다. 반면에 해적들은 상대방의 배에 접근한 후 배로 뛰어들어 싸우는 육박전을 주로 사용하였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적이 우리의 배에 뛰어들지 못하게 해야 했다. 그러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 이른바 거북선[龜船]’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속 거북선에 관한 최초 기록]


태종실록(太宗實錄)의 기록에 따르면, 1413(태종 13)에 임금이 임진(臨津) 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倭船)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고 한다.  1415년 탁신(卓愼)은 국방 문제를 논하면서 거북선[龜船]의 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를 입히지 못하니 가히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거북선의 제도는 이미 조선 초기에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태종 때 만들어진 거북선은 그 후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았던 것 같고, 이것이 임진왜란 때 이순신에 의해 다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증된 거북선 3D 사진
이충무공전서에 기록된 통제영 거북선의 3D모형

 

 

 

 

1. 거북선의 제작방법

 

엄격한 선정: 튼튼하고 빠른 배를 선별하여 거북선 제작에 사용했습니다.

철갑 덮기: 배 위에 철판을 덮어 방어력을 강화했습니다.

용 모양 머리 설치: 배 앞부분에 용 모양 머리를 설치하여 적을 위협했습니다.

포 설치: 측면에 여러 개의 포를 설치하여 공격력을 강화했습니다.

 

2. 거북선의 구조

 

거북선의 구조
거북선의 구조도

 

 

2.1  3층 구조

일반적으로 3층 구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층은 갑판 아래이며 노를 젓는 공간입니다.

2층은 전투 공간이며, 포수와 격군들이 머물렀습니다.

3층은 상갑판이며, 지휘관과 사수들이 머물렀습니다.

 

2.2 방어력:

배 위에 철판으로 만든 철갑을 덮어 적의 공격을 막았습니다.

철갑은 총알과 화살을 막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튼튼했습니다.

용 모양 머리는 적을 위협하고 사기를 높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2.3  공격력:

측면에 여러 개의 포를 설치하여 강력한 공격력을 발휘했습니다.

포는 다양한 크기와 종류가 사용되었습니다.

화력은 당시 다른 함선보다 월등히 뛰어났습니다.

 

2.4  추진력:

노와 도를 사용하여 추진력을 얻었습니다.

노는 1층에서 젓고, 도는 2층에서 사용했습니다.

속도는 당시 다른 함선보다 빠르지 않았지만, 기동성이 뛰어났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거북선 관련 기록]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1592(선조 25) 5 1일의 기사를 들 수 있다. “이에 앞서 이순신은 전투 장비를 크게 정비하면서 자의로 거북선을 만들었다. 이 제도는 배 위에 판목을 깔아 거북 등처럼 만들고 그 위에는 우리 군사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十字)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 · 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았다. 그리고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어 입은 총구멍[銃穴]으로 활용하였으며, 뒤에는 거북의 꼬리를 만들어 꼬리 밑에 총구멍을 설치하였다.


좌우에도 총구멍이 각각 여섯 개가 있었으며
, 군사는 모두 그 밑에 숨어 있도록 하였다. 사면으로 포를 쏠 수 있게 하였고 전후좌우로 이동하는 것이 나는 것처럼 빨랐다. 싸울 때에는 거적이나 풀로 덮어 송곳과 칼날이 드러나지 않게 하였는데, 적이 뛰어오르면 송곳과 칼에 찔리게 되고, 덮쳐 포위하면 화총(火銃)을 일제히 쏘았다. 그리하여 적선 속을 횡행(橫行)하는데도 아군은 손상을 입지 않은 채 가는 곳마다 바람에 쓸리듯 적선을 격파하였으므로 언제나 승리하였다.”

고증된 거북선의 모습

3. 거북선에 대한  논쟁

 

3.1 층 구조

- 2vs 3: 19세기까지 2층 설이 지배적이었으나, 20세기 후반부터 3층 설이 유력해졌습니다. 최근에는 3층 설이

학계 정설로 자리 잡았지만, 아직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 내부 공간 활용: 3층 설의 경우, 각 층의 구체적인 용도와 기능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특히, 2층의 전투 공간 구성과

3층의 방어 구조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 구조적 안정성: 2층 또는 3층 구조의 경우, 거북선의 구조적 안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특히, 3층 구조의 경우,

무게 중심과 복원력 확보 문제가 주요 논쟁 주제입니다.

 

3.2 무장방법

포 설치 방식: 거북선 측면에 설치된 포의 정확한 위치와 방향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특히, 포열의 각도 조절 방식과 사격 범위에 대한 의견이 다양합니다.

화력: 거북선의 화력에 대한 과대평가 논쟁이 있습니다. 실제 전투에서 거북선의 화력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부족합니다.

기타 무기: 화포 외에 사용된 기타 무기에 대한 논쟁도 있습니다. 특히, 돌격용 쇠창과 용 모양의 장식물의 실제 기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3.3 추진력

- 노 vs. : 거북선의 주요 추진력이 노였는지 도()였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도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 추진 효율: 거북선의 추진 효율과 속도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특히, 거북선이 다른 함선에 비해 얼마나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견이 다양합니다.

- 조종 방식: 거북선의 조종 방식에 대한 논쟁도 있습니다. 특히, 방향 조절과 속도 조절 방식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3.4 전술

거북선 함대의 전술: 거북선 함대가 실제 전투에서 어떻게 운영되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특히, 다른 함선과의

협동 방식과 적 함선 공격 전략에 대한 의견이 다양합니다.

거북선의 역할: 거북선의 역할에 대한 과대평가 논쟁이 있습니다. 실제 임진왜란에서 거북선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거북선 도판
현재 고증된 거북선의 도판

 

 

 

참고영상 1  EBS역사채녈e - 판옥선

https://youtu.be/LNppFL9v99Q

판옥선에 관한 영상

 

 

참고영상2 '용머리에 대포 장착'고증 거친 임진왜란 거북선'

https://youtu.be/pNzKD5H6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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