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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야기/인물이야기(고대~근현대)

정약전과 김려 , 최초의 해양백과사전을 저술하다.

by 푸름이j 202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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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해양백과사전 자산어보와 우해이어보

 

 

자산어보 표지
자산어보 표지사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참고

 

자산어보서문사진
자산어보사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

 

1. 정약전의 생애와 흑산도 유배

 

정약전은 1758(영조 34) 경기도 광주 마현(馬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羅州) 혹은 압해(押海)라고도 한다. 자는 천전(天全)이며, 누호(樓號)는 일성(一星), 재호(齋號)는 매심(每心)이다. 섬으로 유배된 뒤의 호는 손암(巽菴)이다.

 

아버지는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丁載遠)이고, 어머니는 해남 윤씨로 윤덕렬(尹德烈)의 딸이자 윤두서(尹斗緖)의 손녀이다. 정재원은 부인이 두 명이었는데, 정약전은 둘째 부인인 윤씨의 31녀 중 장남이다. 정약용과 정약종이 동생이다. 누이는 최초의 천주교 영세자인 이승훈(李承薰)과 결혼하였다.

 

정약전은 경기도 광주에서 살다가 19세 때인 1776(영조 52)에 호조좌랑이 된 부친을 따라 서울로 오게 되었다. 그는 성호 이익(李瀷)의 학문을 이어받은 권철신(權哲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윤하(李潤夏), 이승훈, 김원성(金源星)과 교유하였다. 정약전은 26살인 1783(정조 7)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이듬해 이벽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1790(정조 14)에는 증광별시에서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에 제수되었다.

 

이후 성균관 전적을 거쳐 병조좌랑이 되었다. 이때 정조는 정약전의 준걸한 풍채가 정약용의 아름다운 자태보다 낫다.”라고 하며 총애하였다. 정조 사후에 노론 벽파가 정국을 장악하면서 천주교에 연루된 남인 계열이 정계에서 축출되자 정약전은 1801(순조 1) 2월 강진의 신지도(薪智島)로 유배되었다. 그러다가 11월 조카사위인 황사영의 백서사건으로 다시 압송되어 나주목(羅州牧)의 흑산도(黑山島)에 유배되었다.

 

유배 중에 정약전은 사촌서실(沙村書室)이라는 서당을 지어 어린아이들을 가르쳤다. 또한 자산어보(玆山魚譜)를 비롯하여 소나무 정책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담은 송정사의(松政私議), 흑산도 어민 문순득의 표류담을 적은 표해록(漂海錄)등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2. 자산어보의 저술동기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저술한 이유는 서문에 나타나 있는데 다음과 같다.

 

흑산도 해중에는 어족이 극히 많으나 이름이 알려져 있는 것은 적어 천연물 전체에 걸친 지식의 기재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 마땅히 살펴야 할 바이다. 내가 섬사람들을 널리 심방하였다. 어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말을 하기 때문에 이를 좇을 수가 없었다. 섬 안에 장덕순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집에만 틀어박혀 사람 만나는 것을 거절하고 고서를 탐독하나 집안이 가난하여 서적이 많지 않은 탓으로 식있이 넓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품이 차분하고 정밀하여 풀과 나무, 새와 물고기를 눈에 보이는 대로 모두 자세히 살피고 조용히 정신을 모아서 깊이 생각하여 그 우주 만유의 본래 이치와 인간의 섭리를 터득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은 믿을 만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드디어 그를 맞아들여 연구하고 순서를 강구하여 책을 완성하였는데, 이름지어 자산어보라고 하였다. 곁들여 바다새와 바다말 도 다루어 후인의 신중히 생각여 조사하는데 도움이 되게 하였다.”

 

3. 자산어보의 구성

 

3권으로 구성된 자산어보는 제1권 인류(鱗類), 2권 무인류(無鱗類) 및 개류(介類), 3권 잡류(雜類)로 되어 있다. 각 항목의 명칭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각 항목마다 거기에 표시된 수산 동식물의 근연종(近緣種)7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기입하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인류: 석수어(石首魚) · 치어(鯔魚) · 노어(鱸魚) · 강항어(强項魚) · 시어(鰣魚) · 벽문어(碧紋魚) · 청어(靑魚) · 사어(鯊魚) · 검어(黔魚) · 접어(鰈魚) · 소구어(小口魚) · 도어(魛魚) · 망어(蟒魚) · 청익어(靑翼魚) · 비어(飛魚) · 이어(耳魚) · 전어(箭魚) · 편어(扁魚) · 추어(錘魚) · 대두어(大頭魚).

 

무인류: 분어(鲼魚) · 해만려(海鰻鱺) · 해점어(海鮎魚) · 돈어(魨魚) · 오적어(烏賊魚) · 장어(章魚) · 해돈어(海豚魚) · 인어(人魚) · 사방어(四方魚) · 우어(牛魚) · 회잔어(繪殘魚) · 침어(鱵魚) · 천족섬(千足蟾) · 해타(海鮀) · 경어(鯨魚) · 해하(海蝦) · 해삼(海參) · 굴명충(屈明蟲) · 음충(淫蟲).

 

개류: 해구(海龜) · () · () · () · () · () · 담채(淡菜) · () · () · 율구합(栗毬蛤) · 구배충(龜背蟲) · 풍엽어(楓葉魚).

 

잡류: 해충(海蟲) · 해금(海禽) · 해수(海獸) · 해초(海草).

 

https://youtu.be/tHMvRJJGwTA

참고영상 - 자산어보

 

 

 

4. 김려가 저술한 우해이어보

 

 

 

우해이어보표지
담정유고에 실려진 우해이어보 표지 한국학 중앙연구원 참고

 

 

우해이어보 사진
우해이어보 사진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

 

4.1 김려의 생애

김려는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학자로, 1766년에 태어나 1822년에 사망했습니다. 본관은 연안, 자는 사정, 호는 담정입니다

김려는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15세에 성균관에 입학했습니다. 노론 명문 집안 출신이었지만, 당쟁으로 인해 여러 번 귀양살이를 겪었습니다. 귀양살이 동안에도 학문과 문학에 정진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4.2 김려가 저술한 우해이어보

저서로 『담정유고』 12권이 있으며, 자신과 주위 문인들의 글을 교열하여 『담정총서』 17권을 편집하였다. 말년에는 『한고관외사(寒皐觀外史)』 · 『창가루외사(可樓外史)』 등 야사를 편집했다. 『우해이어보』는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와 함께 우리나라 어보의 쌍벽을 이룬다.

 

4.3 우해이어보 저술동기

저자는 1801(순조 1)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경원 · 부령 · 진해 등지에서 10여 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 저술을 하였는데, 대부분을 부령의 김오(金五)에게 빼앗겼으나, 이 책은 광주리에 숨겼다가 그의 조카 학연(鶴淵)이 정서하여 전해왔다고 한다.

 

우해(牛海)는 마산 진전면의 진해의 별명으로, 이 책은 저자가 진해에 유배되어 있을 때 저술한 것이다. 자서(自序)에 의하면, 진해에 유배된 지 2년 여가 지난 1803년 늦가을에 탈고한 것이다.

 

진해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매일 아침 고기바구니와 낚싯대를 가지고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밤을 새우고 돌아오곤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상하고 기괴하며 놀랄 만한 물고기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보았고, 바다가 육지보다 넓고 해양동물이 육지동물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형색과 성미 중 기록할 만한 것을 함께 채록하였다고 한다.

 

4.4

우해이 어보의 구성

오늘날 창원 연안에 서식하는 어패류의 이름, 모양, 습성, 잡는 방법 등을 담고 있다. 본문과 부록으로 내용을 나누어 구성하였다. 본문은 주로 어류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문절어, 쥐치, 노로어, 도달어 등 총 53종이다. 부록은 게와 패류에 대한 내용을 총 19항목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본문과 부록을 합쳐 총 39수의 칠언절구 한시가 곁들여져 있다. 여기에는 계절에 따른 어촌의 모습, 어종마다 다른 고기잡이 방법이 실려 있다. 더하여 오늘날의 거제도, 반성, 고성 등 남해 연안의 어촌 모습을 반영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sAwpR07xWs

참고영상- 우해이어보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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