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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야기/고대~조선(인물과주제)

잊혀진 역사와 궁궐, 경희궁

푸름이j 2024. 1. 14.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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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의 지도
경희궁의 지도 "서궐도안'

 

 

경희궁 복원도

 

 

 

 경희궁의 역사와 복원

 

 

경희궁의 역사

경희궁은 조선시대 광해군이 왕기를 얻기 위해 지은 궁궐로, 1617년(광해군 9)에 완공되었다. 경희궁은 경복궁 서쪽에 위치하여 ‘서궐’로도 불렸으며, 인조반정 이후에는 왕의 이궁으로 사용되었다.
 
경희궁은 인조, 숙종, 영조, 정조, 헌종, 철종 등 10명의 왕이 임어하였으며,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경희궁에서 보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 편전인 자정전, 내전인 회상전, 융복전 등이 있었으며, 세자궁, 대비궁, 존현각, 태녕전, 융무당, 집경당, 영취정 등도 있었다.
 
그러나 1865년(고종 2) 경복궁 중건이 시작되면서 경희궁의 많은 전각이 훼철되었다. 이후 경희궁은 폐허로 변하고, 일부 전각은 창고나 양잠장, 군사 훈련장 등으로 사용되었다.
 
1910년 경희궁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소유가 되면서 궁궐의 지위를 완전히 상실하였다. 경희궁에 있던 전각들은 일본 거류민 학교인 경성중학교의 교사나 임시 소학교 교원양성소로 사용되었고, 빈터는 학교 운동장이 되었다.
 
해방 후 경희궁은 국유 재산으로 귀속되었으나, 일제강점기의 피해로 인해 궁궐의 옛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1980년대부터 경희궁 복원 사업이 시작되어 현재는 일부 전각이 복원되었으나, 여전히 많은 전각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다.
 

1. 복원된 건축물

1.1 정문
흥화문
흥화문은 광해군 8년(1616년)에 세워진 경희궁의 정문이다. 흥화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 건물이다.[14] 원래 경희궁에는 동문인 흥화문 외에 흥화문 왼쪽에 흥원문, 오른쪽에 개양문, 서쪽에 숭의문, 북쪽에 무덕문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박문사(현재의 장충단 자리)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해 일제가 이전하여 경춘문(景春門)이라 불렀다. 광복 후 장충동 신라호텔의 영빈관 정문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1988년 경희궁터로 다시 옮겨왔다.[ 흥화문은 원래 경희궁터에 동남쪽 금천교 밖, 지금의 구세군회관 자리에 동향하고 있던 경덕궁 정문이었는데, 처음과 달리 지금 위치에 남향하여 세워졌다.

경희궁의 정문
창건당시의 홍화문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1.2 정전 영역
숭정문
숭정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상왕의 승하시 정전이 아닌 정전의 문에서 즉위하는데 경종, 정조, 헌종이 그러했다.

 

 

숭정전의 정문
현재 복원된 숭정문

 


숭정전
숭정전(崇政殿)은 광해군 8년(1616년)에 세운 것으로, 경희궁의 정전이다. 숭정전 일곽은 남향한 경사지에 축대를 조성하여 그 위에 건물이 들어서 있다.[14] 숭정전은 행각으로 둘러졌으며, 뒤로는 자경전이 있다.[14] 동ㆍ서 행각은 남에서 북으로 가면서 바닥과 지붕이 단을 이루며 높아지도록 조성되었다.[14] 숭정전은 이중 월대 위에 세운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이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이건되어 본래 건물은 현재 동국대학교 안에 정각원으로 쓰이고 있다. 현 위치의 건물은 1989년 12월 재건 공사를 시작하여 1994년 10월 주변 행각과 함께 완공한 것이다. 2층 윌대 중 상월대의 답도는 정각원에 남아있고, 하월대의 답도는 복원된 경희궁의 숭정전에 있다. 상월대의 답도는 봉황, 하월대의 답도는 공작무늬이다.[14] 철거전 경복궁못지 않게 큰 규모를 자랑했으나 흥화문,숭정전등 주요 건물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철거되어 경복궁의 10/1정도가 되었다. 경복궁을 비롯한 3대궁은 모두 복원을 시행하고 있으나 경희궁은 그 궁궐들과 함께 이름을 올릴지언정 복원 조차 되지 않았다.
 

복원된 숭정전


1.3 편전 영역
자정전
현재 《서궐도안》에 따라 복원되어 있다. 이 건물은 주로 편전으로 쓰였다고 한다.

 

 

복원된 자정전


1.4 진전 영역
태령전
태령전은 발굴조사시 유구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서궐도안》의 자정전과 숭정전의 위치를 추정하여 복원하였다. 이 건물은 조선 영조의 어진을 모신 곳이었다. 2000년에 서울시에서 복원하였다.

태령전의 전경
복원된 태령전

 

 

2. 외부영역

 

2.1 경희궁 서암
서암은 원래 '왕암'으로 불렸는데, 왕기가 서렸다하여 광해군이 이곳에 경희궁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숙종 때에 이름을 '서암'으로 고치고, 숙종이 직접 사방석에 '서암' 두 글자를 크게 써서 새겨 두었다. 이후로 서암은 조선왕실의 관리를 지속적으로 받아오며 일종의 후원 역할까지 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지속적으로 훼손되다가 1990년도부터 정비가 시작되었고, 2000년도에 경희궁이 복원되며 다시 경희궁 권역으로 들어왔다.

 

서암전경사진
경희궁 서암, 왕암이라고도 불린다.

 

 

2.2 경희궁 방공호

경희궁 방공호는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일제강점기의 지하 시설물입니다. 1944년경에 미군의 공습에 대비하여 만들어졌으며, 길이 110여m, 폭 9m, 높이 6m 규모입니다. 콘크리트 외벽의 두께가 3m에 달하는 등 방공호로서 매우 견고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경희궁 방공호는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일제강점기 방공호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 관람객들에게 공개되고 있습니다.

경희궁 방공호는 내부가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방공호의 입구에는 화장실과 세면대가 있고, 지하 공간은 사무공간처럼 분할되어 있습니다. 또한, 환기시설과 조명시설이 갖춰져 있고, 대형 모터를 설치할 수 있는 받침대도 존재합니다.

 

경희궁 방공호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역사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당시의 기술력과 건설 방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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