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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있는 역사이야기 - 리더의조건2 , 소통

푸름이j 2023. 11. 1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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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의 조건 두 번째, 소통 , 소통왕 정조의 이야기

 

 

소통은 리더 뿐만아니라 우리 실생활에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소통이라고 하면 나혼자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것인데요

소통왕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소통을 잘했던 임금님

 

미남 배우들이 연기를 해서 더욱 유명해진 분이신데요 바로 정조 임금님

이세요

정조대왕 표준 어진

 

1. 정적들과 소통하는 왕, 정조

 

정조는 노론벽파의 수장 이었던 심환지와여러차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소통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적이라 할지라도 나라를 운영하는 일에는 논의하며 의견을 듣고자 했다는 것이다.

 

1.1 정적심환지와 주고받은 비밀 편지

정조는 심환지에게 밀찰(密札), 즉 비밀 편지를 보내 정사를 사전에 조율하곤 했다. 특히 정조는 비밀 편지를 통해 각종 정치적 현안이나 인사 문제, 정국 동향과 여론 파악 등을 하곤 했다. 이른바 막후정치를 펼쳤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정조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에 대한 비밀 유지에 많은 신경을 썼다. 만약 자신들이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른 신하나 백성의 귀에 들어간다면 세상이 발칵 뒤집힐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정조는 비밀 유지를 위해 아무에게나 편지 심부름을 시키지 않고 팽례(伻隷)’라는 전담 연락책을 두었다. 성균관대 안대회 선생은, 승정원에서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정원사령이나 심환지 집안의 청지기, 즉 겸인이 팽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정조는 남의 눈에 띌 것을 염려하여 정원사령보다는 심환지 집안의 겸인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으려 했다고 한다.

 

또한 정조는 심환지에게 편지를 읽은 후에는 즉시 없애라고 지시했다. 179777일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에 그러한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정조와 심환지가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일부분 이미지

 

1.2 정조와 심환지의 편지 내용

계속 나랏일로 바빠 아마도 쉴 틈이 없을 것이다. 간밤에 잘 있었는가? 요사이 소식은 어찌 알려주지 않는가? 그리고 일전에 당부한 것은 과연 어용겸에게 상세히 말하였으며, 누구누구처럼 절친한 사람이나 집안 자제들에게도 절대로 누설하지 말고 더욱 치밀하게 하라고 신신당부하였는가? 내 눈에 띄는 사람은 단지 어용겸 하나뿐이니, 그가 어떻게 내 뜻을 펼지는 모르겠으나 내 마음은 이러하다. 껄껄.

 

산림(송환기)은 상경한 뒤로 성 밖의 여관에 머물고 있다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여관 말고 머무를 곳이 있으면 좋을 듯한데, 이 점을 도모하는 것이 어떠한가?

 

얼마 전 이문원에서 조용한 틈을 타서 노론의 시파와 벽파 중 어떠한 자가 외입한 일을 이야기하였는데, 경이 그것을 서용보에게 말했다고 한다. 서용보가 듣는 것이야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마는, 내가 그에게 말하지 않은 것을 경은 함부로 이야기하였다.

 

나는 이처럼 경을 격의 없이 대하는데 경은 갈수록 입을 조심하지 않는다. 앞으로 경을 대할 때 나 역시 입을 다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으니 우스운 일이다. 이른바 이 떡 먹고 이 말 말아라라는 속담을 다시금 명심하는 것이 어떠한가?

 

경은 이제 늙어서 머리가 세었다. 게다가 처지와 신임이 어떠한가? 그런데 매번 입조심 한 가지 일에 대해서만은 탈이 생기는 일을 면하지 못하니, 경은 과연 생각 없는 늙은이라 하겠다. 너무나도 답답하다. 이영재의 장문 편지에 대한 소문을 사람들에게서 들었는데, 경은 어찌하여 전혀 알려주지 않는가?

 

모두 네 번 보냈고, 네 번째 편지가 더욱 볼 만하다는데 과연 그렇다고 하는가? 우의정의 일은 근래에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가? 서용보가 주장하기는 하나 이익모와 이노춘 중에 누구의 말을 더 듣는다고 하는가? 이만 줄인다.

정사년(1797) 410.

 

2. 정조의 편지를 모은 어찰첩

조선 제22대 왕 정조는 조선 후기 문화를 꽃피웠던 인물입니다. 11살의 어린 나이에 비명에 간 사도세자를 아버지로 두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에게 끝없는 연민을 느끼게 하는 왕이지만 실제 그가 남긴 여러 자취를 통해 볼 때 그는 권력의 정점에서 치밀하게 왕권을 강화시켜 나간 인물입니다.

 

정조는 정치적 현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자신이 원하는 정치적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여러 신하들에게 비밀 편지를 보냅니다. 그 편지들이 수신자의 집안에 대대로 보존되어 지금까지 많은 양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조가 노론 벽파의 거두 심환지와 외삼촌인 홍낙임에게 보낸 편지들입니다. 이 편지들은 용의주도하게 정국을 운영해가는 개혁군주 정조의 모습과 고뇌하는 정조의 인간적인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자료입니다.

 

정조가 말한 것처럼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로서, 어떤 의사결정이라도 어려운 상황에서 내리는 것"은 정조에게 큰 책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강력한 통치력으로 조선을 통치하며, 국가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런 정조의 업적은 조선 후기 문화의 발전을 이끌었고, 그의 행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어찰첩 이미지
정조어찰첩

 

 

 

 

 

 

 

리더에게 있어서 소통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소통왕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정조는 백성들과의 소통은 물론 정적과도 소통도 마다하지 않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덕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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