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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야기/고대~조선(인물과주제)

창덕궁 인정전과 일월오봉도, 사령도

by 푸름이j 2023.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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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 인정전의 역사와 일월오봉도 그리고 사령도

창덕궁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장소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 중에서도 인정전의 일월오봉도와 사령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창덕궁의 이 두 작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일월오봉도: 조선 왕실의 권위와 덕성을 상징하는 그림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는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병풍 그림으로, 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산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조선 왕실의 권위와 덕성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왕궁의 어좌 뒤편에 놓여 있습니다. 그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해와 달의 상징: 중앙에는 해와 달이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해는 왕을, 달은 왕비를 상징합니다.

다섯 개의 산: 해와 달의 양쪽에는 각각 다섯 개의 산이 있습니다. 이 다섯 개의 산은 중국 전설상의 곤륜산을 상징하기도 하고, 오행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소나무: 해와 달, 산 아래에는 소나무가 그려져 있습니다. 소나무는 장수와 영원함을 상징합니다.

일월오봉도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궁중회화로, 조선 왕실의 권위와 덕성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이 그림은 조선시대의 자연관과 우주관을 반영한 그림으로, 조선인의 삶과 정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현대에도 많은 화가들이 일월오봉도를 그려왔으며, 이들의 작품은 전통을 잇는 동시에 새로운 표현 기법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소장의 일월오봉도
일월오봉도(일월오봉병)

 

 

우리나라 화폐 1만원권 신권
화폐 속 일월오봉도, 용비어천가, 세종대왕 어진

 

 

일월오봉도의 의미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산을 그린 그림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왕실의 권위와 덕성: 이 그림은 조선 왕실의 권위와 덕성을 상징합니다. 해는 왕을, 달은 왕비를 상징하며, 다섯 개의 산은 조선의 영토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일월오봉도는 조선 왕실이 하늘과 땅의 섭리에 따라 나라를 다스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우주의 조화: 이 그림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우주의 조화를 상징합니다. 해와 달은 자연의 순환을, 다섯 개의 산은 우주의 조화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일월오봉도는 조선인이 추구한 이상적인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장수와 영원함: 이 그림은 장수와 영원함을 상징합니다. 해와 달은 영원히 뜨고 지며, 소나무는 장수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일월오봉도는 조선인이 바라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령도 : 조선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

사령도는 용, 기린, 거북, 봉황의 네 가지 동물을 그린 그림으로, 이 동물들은 각각 신성한 힘과 권위, 덕망과 지혜, 장수와 영원함, 부귀와 영화를 상징합니다. 이 그림은 조선 왕궁의 어좌 뒤편에 놓여 있으며, 인정전은 조선의 법궁으로, 임금이 즉위식을 거행하고, 대신들과 회의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사령도는 조선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현재의 사령도는 1920년대에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왕실의 권위를 약화시키기 위해, 인정전의 어좌 뒤편에 놓여진 일월오봉도를 제거하고, 사령도를 설치했습니다.

 

사령도는 조선 왕실의 권위와 덕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창덕궁 인정전의 사령도
인정전 어좌 뒤 사령도

 

인정전 : 창덕궁의 역사와 변천사

 

창덕궁의 창건과 인정전의 역사

 

1405년(태종 5년) 창덕궁을 창건할 때 지었다. 건립 당시에는 정면 3칸의 작은 전각이었고, 정문 인정문도 중층이었으며 행각 모서리에 십자각(十字閣)이 있는 등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1418년(세종 즉위년)에 고쳐지으면서 정면 칸을 5칸으로 늘렸다. 1505년(연산군 11년)부터 인정전과 선정전 청기와를 올리려 했으나[4], 1506년(연산군 12년) 9월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당하면서 공사는 중지되었다.

조선 전기 내내 저 모습을 유지했으나,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불탔고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중건했다. 이후 고종 초기까지 약 270년 간 재건하지 못한 경복궁 근정전을 대신해 조선 후기 내내 사실상 정궁 정전(법궁 법전)으로 궁궐을 상징했다. 일례로 민요 《농부가》를 보면 '인정전 달 밝은 밤 세종대왕 놀음이요'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세종대왕 임금의 대명사로, 인정전은 궁궐을 대표하는 건물로 언급한 것이다.

이괄의 난, 병자호란의 화마도 비껴갔으나 1803년(순조 3년)에 화재로 불탔고 다음 해 다시 지은 뒤 1857년(철종 8년)에 다시 보수했다. 1907년(융희 원년) 순종이 즉위하고 창덕궁으로 이어한 뒤 일제강점기인 1926년까지 살면서 인정전 건물이 많이 바뀌었다. 1994년에 원래대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대한제국에서부터 일제강점기의 인정전

순종황제의 이어 이후 달라진 인정전

내부엔 노란색 천으로 장식한 천과 커튼, 전등이 달려있다. 창문과 문도 창호지 대신 유리로 바뀌었다. 건물 내부 바닥도 전통 전돌이 아닌 일본식 마루가 깔렸다.

 

인정전과 행각은 따로 있었는데, 원래의 행각을 철거하고 한국, 일본, 서양의 양식이 섞인 귀빈대기실 등을 지어 인정전과 복도를 바로 연결시켰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변형이 더 심해졌다.

 

어좌와 일월오봉병이 사라지고 대신 작은 서양식 의자와 테이블, 일본식 금박기법과 자수기법을 적용한 커다랗고 괴랄한 봉황그림만 달랑 놓였다

 

일제강점기의 인정전
일제강점기의 인정전 내부모습

 

앞마당의 박석도 걷혔고 그 자리에 잔디가 깔리으며 모란같은 화초가 심어졌다. 어좌는 1960년대 초에[15] 인정전 주변의 외행각은 1991년 이후, 그리고 앞마당 박석은 1994년에 복원했다.

 

1980년대의 인정전 사진
1980년대의 인정전 일대

 

다른 궁궐 건물과는 다르게, 용마루에 오얏꽃(자두꽃) 문양이 박혀 있다. 대한제국 국장 및 황실의 문장이었던 '이화문(李花紋)'이다. 대한제국 황실이 전주 이씨라 오얏꽃을 문장으로 삼은 건데, 다른 조선 궁궐에는 이런 장식이 없듯 이렇게 가문 문장을 새겨넣는 것은 개화기에 서양이나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순종이 이어했을 당시에 박았다는 의견과 일제강점기 이후에 박았다는 의견이 있다.

 

이화문이 새겨진 인정전의 용마루
인정전 용마루에 새겨진 이화문

 

전자는 이미 구한말에 궁에 유리창과 커튼, 카페트를 들이는 등 다방면에서 외국식을 도입하고 있었던 것을 들 수 있고, 후자는 일본이 전통 양식 파괴를 위해 일부러 용마루에 박았다는 것인데, 대한제국 황실이 경술국치 이후 이왕가로 격하되었음에도 이화문을 자신들의 문양으로 계속 썼기 때문에 아주 근거없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이것이 와전되어 꽃 종류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쿠라를 박았다는 낭설이 나돌기도 했다.

 

 

촬영한 사진 속 인정전
1902년 세키노 타다시가 촬영한 사진속 인정전

 

동궐도
동궐도 속의 인정전과 그 주변

 

일제강점기의 인정전
일제강점기 인정전과 그 일곽

 

복원된 인정전 일곽
복원된 현재의 인정전

 

복원된 인정전 내부사진
대한제국 시기의 모습으로 복원된 인정전

마무리

창덕궁의 인정전은 일월오봉도와 사령도와 함께 조선 왕실의 권위와 덕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두 그림과 인정전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서,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 두 작품과 인정전은 창덕궁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그림과 건물 사이의 매력과 의미를 전달하며, 한국의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자주묻는 질문(Q&A)

 

1. 창덕궁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나요?

주소는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이고,  서울 지하철 종로3가 역 6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산책하며 걸어보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2. 인정전은 어떻게 복원되었나요?

인정전은 1994년에 원래대로 복원되었으며, 전통적인 한국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3. 일월오봉도와 사령도의 제작자는 누구인가요?

이 작품들의 정확한 제작자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조선시대에 그려졌으며 조선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4. 창덕궁을 방문하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창덕궁은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출구로 나오셔서 5분정도 직진하시면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5. 창덕궁 후원관람은 어떻게 하나요?

후원관람은 시간제 관람으로  개인관람을 하실 수 없고 전문 해설사와 함께 해설을 들으며 관람이 가능하고 ,

창덕궁 홈페이지와 현장예매가 가능하며 , 혹서기(7~8월) 와 혹한기(12~2월) 에는  가장 안쪽 권역인 옥류천

권역은 관람하실 수 없으며, 현재는 창덕궁관리소의 공지가 있을 때까지 옥류천권역의 문화재 보수공사로 인해

관람이 제한되어 있어 존덕정과 관람정, 승재정 일대까지만 관람이 가능합니다.

단풍 절정시기에는 조기에 매진 되오니 미리 예매하시어 관람에 불편을 겪지 않도록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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