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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야기/고대~조선(인물과주제)

효명세자의 성균관 입학례를 기록한 [왕세자 입학도첩]

by 푸름이j 2023.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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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명세자의 성균관 입학례를 담은 "왕세자입학도첩"

 

 

국내 유일본 <왕세자 입학도첩>

유일하게 1점만 남아 있는 『왕세자입학도첩1817(순조 17) 311일 성균관에서 거행된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 뒤에 익종(翼宗)으로 추존)의 입학례를 기념한 화첩이다. 2010617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307호로 지정되었다.

 

 1817년(순조17) 3월 17일 순조의 맏아들인 효명세자의 성균관 입학례를 그린 6폭의 그림. 왕세자가 창경궁 홍화문을 나와 성균관으로 향하는 모습부터 입학례를 마치고 궁으로 돌아와 문무 관원들과 종친들의 축하를 받는 모습까지 입학례 과정이 담겨있다.

 

 

왕세자 입학도첩의 구성

출궁도 : 왕세자가 창경궁 홍화문을 나와 성균관으로 향하는 모습
작헌도 : 왕세자가 성균관 대성전에 있는 공자와 네 성인의 신위에 술잔을 올리고 예를 표하는 모습
왕복도 : 왕세자가 스승에게 배움을 청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
수폐도 : 왕세자가 스승에게 배움을 청하며 최소한의 예물을 바치며 예를 갖추는 모습
입학도 : 왕세자가 성균관 박사에게 가르침을 받는 모습
수하도 : 입학례를 마친 왕세자가 궁으로 돌아와 관원과 종친에게 축하를 받는 모습

 

왕세자 입학도첩 속 다양한 모습들

 

효명세자의 입학례를 그린 기록화이지만 효명세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는데, 훗날 왕위에 오를 왕세자는 

함부로 그림으로 그려선 안 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대신 창경궁에서 나와 성균관으로 향하는 모습을 그린 

출궁도에서는 왕세자의 스승인 시강관들과 경호무사인 익위사들이 따르고 있는 빈 가마를 볼 수 있다.

 또 다른 그림에서도 효명세자의 모습이 아닌 노란색으로 그려진 왕세자의 동선만을 볼 수 있다.

 

성균관에 도착한 왕세자는 곤룡포를 벗고 학생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입학례에서 왕세자는 왕세자가 아닌

성균관의 한 유생으로써 스승과 선배 유생들에게 예를 갖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학생복으로 갈아입은 왕세자는

성균관 대성전에서 손을 씻고 공자와 네 성인의 신위에 잔을 바치고 예를 올렸다.

작헌도 속 대성전 중앙에는 북쪽 벽에 공자의 신위가 있고 동·서쪽에 네 성인의 신위가 있다. 가운데 노란색

사각형 다섯 개는 왕세자가 술을 올리고 절하는 자리를 나타낸 것이다.

 

대성전에서 나온 왕세자는 명륜당으로 이동한다. <왕세자입학도첩> 왕복도에는 명륜당에 도착한 왕세자가

성균관 박사에게 수업을 청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왕세자는 명륜당의 서쪽 계단으로 올라가

박사에게 수업을 청하고 박사는 동쪽 계단을 올라 왕세자의 청을 두 번 사양한 후 수락한다.

 

왕복도의 중앙 부분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바로 왕세자의 스승인 성균관 박사인데,

조선시대에는 해가 뜨는 동쪽이 상석이었기 때문에 동쪽 계단을 오르는 스승이 왕세자보다 윗사람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성균관 박사에게 수업을 받기 전 왕세자는 준비한 예물을 박사에게 건넨다.

 

<왕세자입학도첩> 중 수폐도에는 붉은 옷을 입은 박사 앞으로 예물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은 술병, 안주 상, 폐백 광주리를 들고 있는데 왕세자는 박사에게 두 번 절한 다음 무릎을 꿇고 폐백 광주리를

직접 바치고 마찬가지로 박사는 두 번 절한 뒤 무릎을 꿇고 이를 받는다.  

 

왕세자 입학도첩 실제 이미지

 

1. 출궁도

입학도첩 중 첫번째 그림
<왕세자 입학도첩> 중 출궁의 모습

 

2. 작헌도

입학도첩 중 두 번째 그림
<왕세자 입학도첩> 중 작헌의 모습

 

 

3. 왕복도

입학도첩 중 세 번째 이미지
<왕세자 입학도첩> 중 왕복의 모습

 

 

4.수폐도

입학도첩 중 네 번째 이미지
<왕세자 입학도첩> 중 수폐의 모습

 

 

5. 입학도 

입학도첩 중 다섯 번째 이미지
<왕세자 입학도첩> 중 입학의 모습

 

 

6. 수하도

입학도첩 중 마지막 이미지
<왕세자 입학도첩> 중 수하의 모습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한 힘

 

예물을 받은 박사는 검은색 공복으로 갈아입은 뒤 동쪽에 앉고 왕세자는 서쪽에 자리한다. 

그런데 <왕세자입학도첩> 중  입학도를 살펴보면 성균관 박사의 책은 책상 위에 놓여있지만 왕세자의 

책은 바닥에 놓여있다.  즉 왕세자는 수업을 듣는 동안 바닥에 책을 놓고 엎드려 있어야 했음을 보여주는데, 

이 역시 왕세자라고 해도 스승 앞에서는 제자의 예를 다해야 했음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는 왕세자의 입학례 때 왕세자를 위한 책상을 만들라고 명했지만 예조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굽혀야하기도 했다.

 

입학례를 마친 왕세자는 다시 궁으로 돌아와 문무 관원들과 종친들의 축하를 받았다.  <왕세자입학도첩> 중

수하도에는 입학례를 마친 왕세자가 시민당에서 축하를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때에는 대독관이 

축하의 글을 먼저 낭독하고 관리들이 두 번 절을 하고 나면 왕세자가 답례로 두 번 절을 하였다.

 

 

왕세자 입학도첩 관련 영상

KBS1 천상의 컬렉션 - 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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