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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야기/근현대(인물과 유적지)

정동이야기 - 근대 교육의 발상지

by 푸름이j 2025.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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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학교와 교육이 시작된 곳이 정동이라는 것 알고계시나요?

정동 하면, 덕수궁 돌담길, 서울시립미술관 등 역사와 문화가 잘 어우러진 명소로 알고계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저는 정동의 역사를 통해 근대 교육이 태동하게 된 배경, 외국인 선교사들의

헌신과 열정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배재학당 동관건물 뒤쪽에 세워진 비석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앞에 신교육의 발상지라 새겨진 비석이 있다.

 

 1. 교육의 시작, 왜 정동이었을까?

시대적 배경: 19세기 말 조선은 서구 문물 유입과 개항 압력 속에서 격동기를 맞았습니다. 전통 서당 교육만으로는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국가적 필요: 국가 생존과 자주독립, 근대화를 위해 새로운 지식과 사상을 가르칠 근대식 학교와 인재 양성이 절실했습니다. 교육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부상했습니다.

 

지리적 이점: 정동은 외국 공사관이 밀집해 있었고 서양 선교사들의 활동이 활발하여, 자연스럽게 신교육 도입과 확산에 최적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2. 근대교육의 시작, 정부와 민간주도의 학교가 설립되다

19세기 말, 조선은 문호 개방과 함께 서구 문물과 사상이 유입되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유교 교육 시스템만으로는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근대 교육의 필요성이 절감되었고, 정부와 민간(특히 서양 선교사) 주도로 새로운 교육 기관들이 설립되기 시작했습니다.

 

 3. 정부주도의 관립학교

1800년대, 정부가 주도하여 학교를 설립하는데요, 기존의 서당에서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근대화에 따라가기가 어렵다고 보았고 새로운 교육의 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서당에서 학교로 발전하게 되었는데요 처음으로 설립된 교육기관이 동문학입니다. 동문학은 외국어 교육 기관으로  외교에 필요한 인력이 필요함에 따라 설립된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최초의 교육기관, 동문학 (同文學)

  • 설립 시기: 1883년 8월
  • 설립 주체: 조선 정부 (외교 통상 업무를 담당하던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소속)
  • 성격: 관립 외국어 교육 기관 (정부에서 세운 학교)
  • 설립 목적: 조선이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이후 서구 여러 나라와 수교하게 되면서, 외국과의 교섭 및 통상 업무에 필요한 통역관(통변관, 通辯官)을 전문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즉, 급증하는 외교 실무 인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이 강했습니다.
  • 교육 내용: 주로 영어 교육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당시 미국, 영국 등 영어권 국가와의 교류가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교사로는 청나라를 통해 초빙된 외국인이나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조선인이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교육 방식은 문법보다는 실제 외교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회화나 번역 등 실용적인 능력 배양에 초점을 맞추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양의 근대학문을  폭넓게 배우는 학교, 육영공원 (育英公院, 1886)

동문학은 외교관 양성이 주목적으로 세워진 교육기관이었다면 육영공원은 폭넓게 서양의 근대학문을

배울수 있는학교가 세워졌습니다.  공원이라는 이름을 보면 학교가 맞나 싶을 것 같아요 좀 특별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이 육영공원도 8년만에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이유는 갑오개혁시기, 교육제도의 변화와 제정문제,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어 폐지하게 되었습니다.

육영공원육영공원사진
육영공원 교실 모습(좌) , 수업전경(우)

 

  • 설립 시기: 1886년 9월
  • 폐지 시기: 1894년 (갑오개혁 시기)
  • 설립 주체: 조선 정부 (고종 황제의 지시에 따라 설립)
  • 성격: 관립 근대식 교육 기관 (정부에서 세운 학교)
  • 설립 목적: 조선의 개화 정책을 이끌어갈 젊은 엘리트 관료 및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단순히 외국어 통역관 양성이 목표였던 동문학(1883)보다 한 단계 나아가, 서양의 폭넓은 근대 학문을 체계적으로 교육하여 국가의 근대화를 이끌 인재를 기르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 교육 내용: 영어를 기본으로 하여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영어를 배우는 동시에 영어로 다른 과목 학습), 자연 과학 (물리, 화학, 생물 등), 수학, 세계사, 지리, 정치학, 국제법 등 다양하고 폭넓은 서양의 근대 학문을 가르쳤습니다. 단순 지식 전달보다는 토론, 문답 등 근대적인 교육 방식을 도입하려 노력했습니다.

 

근대식 군사훈련과 교육을 위한 사관학교의 등장 , 연무공원(鍊武公院)

 연무공원은 임오군란으로 인해 좌절되었던 신식군인 양성을 위해 고종의 명으로 설립된 최초의 사관학교인데요, 1883년부터

장교를 양성하고 군대를 근대식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미국에 군사교관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1888년 4월 수석교관

다이(Dye,W. M.), 조교관 커민즈(Cummins,E. H.) · 리(Lee,J. G.)와 일본의 미국영사관에 근무하던 닌스테드 (Nienstead,F. J. H.) 등 4명의 미국인 교관이 내한하였다.  이들은 모두 퇴역 군인들로서, 다이 수석교관을 제외한 3명은 정규

사관학교 교육을 받은 장교는 아니었다. 조선 정부는 미국인 교관이 도착하면 곧 훈련을 시작할 수 있도록 1888년 1월부터 연무공원의 설치 준비를 시작하여 2월 6일에 완성하였다.

 

설립 시기: 정확한 설립 연도는 기록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대체로 1888년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설립 주체: 조선 정부 (고종 황제의 지시에 따라 병조 산하에 설치)

성격: 관립 근대식 군사 교육 기관 (정부에서 세운 군사 학교)

설립 목적: 서양식 군사 기술과 전술을 도입하여 신식 군대를 이끌 장교 및 하사관을 양성하고, 이를 통해 군사력을 현대화하여 국가를 방어(부국강병)하는 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이는 임오군란 등 기존 군대의 문제점과 외세의 위협 속에서 군사력 강화가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교육 내용:

제식 훈련: 서양식 대열 훈련, 총기 사용법 등 기본적인 군사 훈련

전술 및 전략: 근대적인 전투 방식과 부대 운용법

무기 조작: 당시 도입되던 신식 소총, 대포 등 새로운 무기의 사용법 및 유지 보수

기타 군사학 관련 지식

변천: 연무공원은 이후 갑오개혁(1894)과 대한제국 수립(1897)을 거치면서 군제 개편에 따라 그 명칭이나 기능이 변화하거나 다른 기관(훈련대, 친위대, 시위대 관련 교육 기관 또는 무관학교)으로 흡수, 발전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4. 민간 및 선교사 주도의 사립학교

정부의 노력이 있었지만 재정 부족과 인식 부족 등으로 한계가 있었고, 이때 서양 선교사들이 종교 전파와 함께 교육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근대 교육 확산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일부 개화 지식인들이나 지역 유지들이 자발적으로 학교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최초의 근대식 사립학교, 원산학사 (元山學舍, 1883)

 

원산학사전경
원산학사 전경사진 네이버 백과사전

 

함경도 덕원(원산)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최초의 근대식 사립 학교로 평가받습니다. 문예반과 무예반을 두어

근대 학문과 군사 훈련을 병행했습니다.

  • 설립 시기: 1883년
  • 위치: 함경남도 덕원부(현재의 북한 원산시)에 설립되었습니다.
  • 설립 주체: 함경도 덕원부(현재의 원산 지역)의 주민들과 지방 관료들 (특히 당시 덕원부사였던 정현석 등의 주도로 설립)
  • 성격: 한국 최초의 근대식 사립 학교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세운 학교)
  • 설립 배경: 원산은 1880년에 개항된 항구 도시로, 외국과의 교류가 일찍 시작된 곳이었습니다.개항 이후 새로운 문물과 사상이 유입되면서, 지역 주민들과 관리들 사이에서 시대 변화에 적응하고 지역 사회와 국가 발전에 기여할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중앙 정부나 외국 선교사의 주도가 아닌, 지역 주민과 지방 관리들이 자발적으로 필요성을 느끼고 설립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 설립 목적: 외국과의 교류에 필요한 실용적인 지식과 함께 전통적인 소양, 그리고 군사적 능력까지 갖춘 인재를 양성하여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고 지역 사회를 발전시키고자 했습니다.
  • 교육 내용 : 문예반: 전통적인 유교 경전 외에도 국제 정세, 지리, 수학 등 근대적인 학문을 가르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문(文)을 통한 교양 함양과 실무 능력 배양을 목표로 한 것입니다.  무예반: 활쏘기 등 전통 무예와 함께 근대식 군사 훈련(조련) 및 병법 등을 가르쳐 무(武)를 통한 국방 능력 강화를 목표로 했습니다.

 

푸른눈의 서양인선교사가 설립한 학교 배재학당 (培材學堂, 1885, 서울 정동)

 

배재학당의 설립자,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

헨리거하드아펜젤러 (1858년 2월 6일~1902년 6월 11일

  • 1885년 조선에 입국하여 활동한 미국 감리회(북감리회) 선교사이다. 한국어 이름은 아편설라(亞篇薛羅)였다.
  • 암울했던 구한말 내한하여 헌신한 개신교 선교사 1세대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이다. 배재학당과 정동교회를 설립하는 등 교육과 선교에 힘썼으며 성경번역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그의 아들 헨리 다지 아펜젤러는 아버지를 이어 배재학당에 교장으로 취임해 교육에 헌신했고, 딸 엘리스 레베카 아펜젤러 역시 이화학당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구 배재학당 전경사진배재학당 전경
공사중인 구 배재학당의 모습 과 배재학당 동관의 전경사진 , 네이버백과사전

 

  • 설립 시기: 1885년 8월 (초기에는 영어 교실 형태로 시작)
  • 성격: 외국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 사립 교육 기관 중 하나입니다.
  • 위치: 서울 정동 (현재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이 위치한 곳)
  • 설립 목적: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 청년들에게 서양의 근대 학문(신학문)과 기독교 정신을 가르쳐, 급변하는 시대에 필요한 유능하고 올바른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습니다.
  • 교명 '배재학당': 1886년 고종 황제가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의미의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교명과 현판을 하사했습니다. 이는 왕실이 학교의 설립을 인정하고 지지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 교육 내용: 초기에는 영어 교육에 중점을 두었고,  점차 교육 과정을 확대하여 수학, 과학(물리, 화학 등), 지리, 역사, 만국공법 등 다양한 서양의 근대 학문을 가르쳤으며  성경 교육과 채플 등 기독교 교육도 병행되었습니다. 근대적인 교과서 사용, 학년별 수업 등 새로운 교육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 주요 동문: 배재학당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많은 인물을 배출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한글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국어학자 주시경, 독립운동가이자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교사로 활동) 등이 있습니다.
  • 현재: 배재학당의 정신은 오늘날 대전에 위치한 배재대학교로 이어지고 있으며, 원래 학교가 있던 서울 정동 부지에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이 세워져 그 역사와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정동을 방문하시면 꼭 들러볼 만한 곳입니다

 

여성들을 위한 최초의 근대식 학교 - 이화학당(梨花學堂, 1886, 서울 정동)

 

이화학당의 설립자 스크랜튼 선교사의 어머니 메리 스크랜튼

이화학당의 설림자 메리 스크랜튼

  • 미국의 교육자이자 개신교 감리교회 선교사이다. 한국어로는 시란돈(施蘭敦)이라는 이름을 썼다. 이화여자대학교와 이화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이화학당과 수원시 위치한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의 전신인 삼일소학당을 창립하였다.
  • 갑신정변 이후 북아메리카 감리교회에서 파견된 5인의 여자 선교사 중 한 사람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을 설립하여 한국 여성 교육의 시초가 된 인물이라 평가받는다.
  • 그녀의 아들인 윌리엄 스크랜튼 또한 1884년 예일 대학교를 졸업하고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의 첫 번째 감리교 선교사로 활동하며 한국의 교육을 위해 활동한 바 있다

 

이화학당 전경
이화학당의 전경사진

  • 설립 시기: 1886년 5월 31일 (단 한 명의 학생으로 시작)
  • 설립 주체: 미국 북감리교 소속 여성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Mary Fletcher Scranton)
  • 성격: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을 위한 근대식 사립 교육 기관
  • 위치: 서울 정동 (배재학당과 가까운 곳에 위치)
  • 설립 배경 및 목적: 당시 조선 사회는 여성을 위한 교육 기관이 전무했으며, 여성의 사회 활동은 극도로 제한적이었습니다.스크랜튼 부인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 여성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여, 그들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기독교 신앙 안에서 근대적인 여성으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학교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처음에는 학생을 모집하는 것조차 어려워 단 한 명의 학생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그 뜻이 알려지면서 학생 수가 늘어났습니다. 교명 '이화학당': 1887, 명성황후(또는 고종 황제)'배꽃처럼 순수하고 아름답게 자라나라'는 의미를 담아 **'이화학당(梨花學堂)'**이라는 이름을 직접 하사했습니다. 이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 교육 기관이 왕실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닙니다.
  • 교육 내용: 초기에는 한글, 기초 한문, 산수 등 기초 교육과 성경, 재봉, 자수 등 실용적인 교육을 병행했습니다. 점차 교육 과정이 확대되어 영어, 음악, 체육 등 다양한 근대 학문과 예체능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여성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로 키우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 현재: 이화학당은 이후 중등, 고등 교육 과정을 개설하며 발전하여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사학 중 하나인 이화여자대학교로 성장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교내에는 이화학당의 역사를 기념하는 이화역사관이 있습니다.. 여성 교육의 불모지였던 조선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역시 정동의 대표적 학교)

근대교육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근대교육을 했던 학교와 교육방식 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셨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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