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근으로 고통받는 제주도민을 구휼한 거상 김만덕
1. 김만덕의 생애
어린 시절 (1739년 ~ 1758년)
1739년 제주도 서귀포 매일오름 마을에서 태어남
어릴 적 가난하여 10세에 기생으로 생활 시작
뛰어난 미모와 지혜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사업에 대한 남다른 감각으로 재산을 모으기 시작
사업 성공 (1759년 ~ 1800년)
1759년(영조 35) 18세의 나이로 독립하여 상업 활동 시작
해상 무역을 통해 큰 부를 축적
중국, 일본 등과 활발한 무역
해삼, 명태, 녹차 등 제주 특산품 수출
비단, 도자기 등 중국 상품 수입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各地에 토지를 소유
제주도: 500여결의 토지 소유
한양, 평안도, 함경도 등에도 토지 소유
대규모 노비 소유하여 농업, 수산업, 제조업 등 다양한 사업 운영
농업: 벼, 콩, 면화 등 재배
수산업: 어로, 양식
제조업: 면직물, 도자기, 술 등 생산
뛰어난 경영 능력으로 사업 성공
능숙한 회계 관리
적극적인 투자
유능한 인재 발굴 및 활용
사회 공헌 (1801년 ~ 1812년)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과 쌀을 나눠줌
향교 설립, 도로 개설 등 사회 공헌 활동
제주 향교 설립
제주 서귀포 매일오름~성산일출봉 도로 개설
빈민 구제
조선 최초 여성 기업가로 평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기여
사망 (1812년)
1812년(순조 12) 74세의 나이로 사망
제주도 서귀포 매일오름에 묘소 위치
2. 상인으로서의 원칙
“싸게, 그러나 많이 판다”
만덕은 박리다매(薄利多賣), 곧 하나하나의 이익은 적게 보는 대신 많이 팔아서 큰 이익을 남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기녀 생활의 경험을 살려 제주 양반집 부녀자나 기녀들에게 옷감, 장신구, 화장품 등을 싼 가격에 팔면서 그 양을 점차 늘려나가면서 큰 이익을 남겼다.
“알맞은 가격으로 사고 판다”
만덕은 정가매매(定價賣買), 곧 적정한 가격으로 사고파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큰 이익이나 눈앞의 이익을 보려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합리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적정가격으로 변함없이 상거래를 했다.
“정직한 믿음을 판다”
만덕은 신용본위(信用本位), 믿음을 바탕으로 거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정직한 신용으로 철저하게 상거래를 했는데, 돈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직과 성실성을 기반으로 사업을 꾸려 나갔다.
3.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김만덕
뛰어난 사업 능력으로 축적한 재산을 사회 공헌에 사용
제주도민 구휼: 1795년 제주도 흉년 당시 자신의 재산을 털어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눠줌
향교 설립: 교육 기회 확대를 위해 제주 향교 설립
도로 개설: 제주 서귀포 매일오름~성산일출봉 도로 개설
빈민 구제: 빈민들에게 음식과 옷을 나눠줌, 의료 지원 제공
기타: 불우한 학생들에게 장학금 제공, 사찰 및 공공 시설 기부
4. 김만덕, 금강산을 유람하고 의녀반수에 임명되다
1795년(정조 19년) 제주도에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여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림
김만덕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백성들을 구제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정조로부터 상을 받음
상으로 금강산 유람을 소원하고 허락받음
금강산 유람 후 한양에 머물면서 정조를 만나 면담
정조는 김만덕의 뛰어난 능력과 따뜻한 마음에 감명 받아 의녀반수에 임명
5. 김만덕의 업적
뛰어난 사업 능력과 리더십으로 조선 후기 최고의 여성 거상으로 평가받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
해상 무역을 통해 조선 경제 발전에 기여
사회 공헌 활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기여
6. [만덕전]의 집필을 명령한 정조
6.1 만덕전 집필 명령
정조는 김만덕의 일생을 기록한 책을 만들고자 함
여성의 뛰어난 능력과 사회 공헌을 드러내고자 함
1796년(정조 20년) 채제공에게 만덕전 집필 명령
채제공은 조선 후기 유명한 문인
6.2 만덕전의 내용
김만덕의 어린 시절부터 사망까지 일생을 다룬 소설
김만덕의 뛰어난 사업 능력, 따뜻한 마음, 사회 공헌 활동 등을 생생하게 묘사
여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
6.4 만덕전의 의미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기여
여성의 뛰어난 능력과 사회 공헌을 인정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작품
6.5 정조가 만덕전 집필을 명령한 이유
김만덕의 뛰어난 능력과 사회 공헌을 기리고 싶었음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싶었음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하고 싶었음
7. 김만덕을 기리는 사람들
매년 김만덕의 기일(10월 22일)에 가까운 일요일, 건입동 사라봉 모충사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와 김만덕재단이 주최하고 김만덕기념관이 주관하는 만덕제 봉행 및 김만덕상 시상식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만덕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제주의 위대한 여성 의인 김만덕을 기리기 위해 1980년부터 거행해온 제례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제례들이 남성 제관들에 의해 봉행되고 있는 반면, 만덕제는 덕망있는 여성들을 제관으로 선정하여 봉행되고 있습니다.
김만덕상은 의인 김만덕의 숭고한 정신을 추모·계승하기 위하여 '제주특별자치도 김만덕상 조례'에 따라 국가나 지역사회에 헌신한 모범여성을 발굴하여 수여하는 상입니다. 1980년 만덕봉사상을 시작으로 매년 1회 시상하고 있으며, 수상 부문은 순수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등 헌신적으로 노력 봉사에 앞장서고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 부문과 경제활동으로 얻은 이윤을 나눔 베풂의 실천으로 이웃과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인 부문이 있습니다.
8. 김만덕을 주제로 방영된 드라마
KBS 특별기획드라마 '거상 김만덕'
마무리
조선에서는 제주 여인들이 육지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던 시기, 전재산을 털어 제주도민들 구휼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양으로 올라와 정조를 만나고 금강산을 유람한 뒤 의녀반수라는 직책을 하사받은 거상 김만덕
여인들도 출세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준 여인으로 조선 최초의 여성 사업가로 평가받는 김만덕 선생님의
일대기를 보면서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이웃사랑'의 본보기 되어주었습니다.
오늘날 까지도 김만덕을 기리고 실천하려고 애쓰는 제주도민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시대가 배워야 할
산 교육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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