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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초실록1, 벌레와 기근

푸름이j 2024. 3. 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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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의 기근

 

 

조선시대, 백성들의 삶과 고통1, 벌레와 기근

 

 

메뚜기떼 사진
메뚜기떼 사진

 

 

1. 메뚜기떼로 인한 고통

 

조선왕조실록에는 메뚜기 떼로 인한 피해를 기록한 내용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메뚜기 떼는 농작물을 파괴하여 기근을 유발하고, 질병을 퍼뜨리는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1.1 메뚜기 떼 발생 빈도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메뚜기 떼는 대략 10년 간격으로 발생했습니다. 특히, 15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는 메뚜기 떼 발생이 빈번했으며, 피해 규모도 컸습니다.

 

1.2 메뚜기 떼로 인한 피해

농작물 피해: 메뚜기 떼는 벼, 보리, 콩 등 다양한 농작물을하여 심각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로 인해 기근이 발생하고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기근: 메뚜기 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기근을 유발했습니다. 기근은 백성들의 영양실조와 사망률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질병: 메뚜기 떼는 질병을 퍼뜨리는 매개체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메뚜기 떼가 옮기는 장티푸스는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켰습니다.

사회적 불안: 메뚜기 떼로 인한 피해는 사회적 불안을 야기했습니다. 백성들은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았으며,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졌습니다.

 

1.3 정부의 대응

기도: 정부는 메뚜기 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도를 올렸습니다.

방제 노력: 정부는 메뚜기 떼를 방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예를 들어, 메뚜기 잡는 사람을 동원하고, 메뚜기를 죽일 약을 살포했습니다.

구제 활동: 정부는 기근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구제 활동을 펼쳤습니다. 예를 들어, 곡물을 나누어주고, 빈민들을 위한 급식소를 운영했습니다.

 

1.4 메뚜기 떼에 대한 인식

조선 사람들은 메뚜기 떼를 하늘의 분노로 여겼습니다. 메뚜기 떼가 발생하면 정치적 혼란이나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1.5 현대 사회에 대한 교훈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메뚜기 떼로 인한 피해는 현대 사회에도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로 인해 메뚜기 떼와 같은 해충 발생 위험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해충 발생을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2. 기근으로 인한 고통

 

대기근 관련 이미지
기근으로 인해 죽어가는 백성들

2.1  기근 발생 원인

기후 변화: 조선 시대는 소빙기라는 기후 변화 시기를 겪었습니다. 이로 인해 강수량 변화, 잦은 가뭄, 홍수 등이 발생하여 농업 생산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자연재해: 태풍, 가뭄, 홍수, 지진 등 자연재해는 농작물 피해를 야기하고 기근을 유발했습니다. 특히, 17세기 후반에는 갑자기온병(1637)과 경신대기근(1670-1671), 을병대기근(1695-1699) 등 심각한 기근이 연달아 발생했습니다.

정치적 문제: 정부의 잘못된 정책, 토지 소유 불균형, 농민에 대한 과도한 착취 등 정치적 문제도 기근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경신대기근에 관한 이야기>

경술·신해 대기근(庚戌辛亥大飢饉) 또는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은 조선 현종 11(1670) 12(1671)에 걸쳐 발생한 대기근이다. 경술(庚戌)년에서 신해(辛亥)년의 2년에 이르렀기 때문에 앞 글자를 따서 '경신(庚辛)대기근'이라 부른다.
1670년부터 2년간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와 병충해로 인한 곡물 생산량의 급격한 감소, 태풍, 전염병의 유행 등으로 전국규모의 아사자와 병사자가 발생해 행정이 마비될 정도의 대사건이었다. 주변 청나라와 일본도 동일한 대기근으로 큰 위기였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여파를 탈출하지 못한 데에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국란이다보니 이른바 예송논쟁 등 당파싸움도 쉬어갈 정도였다. 당시 조정은 세금도 낮추고 구휼미도 온 힘을 다해 배급했지만 백성들의 떼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외척인 병조판서 김좌명, 그 후임인 서필원 등 고관대작들조차 굶주리다 병에 걸려 죽는 전대미문의 위기였다. 그야말로 대재앙, 대참사, 생지옥이라는 단어도 부족할 정도였다. 말그대로 현생 속 도래한 지옥, 즉 헬조선이었다.
 2년 간의 조선은 "차라리 임진왜란 때가 더 나았다"는 이야기가 정사에까지 기록되어 있을 만큼 참혹했다.

 

2.2 기근의 영향

식량 부족: 기근은 심각한 식량 부족을 초래했습니다. 백성들은 굶주림으로 고통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아사 (굶어죽음)했습니다.

질병: 기아와 영양실조는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켰습니다. 역병, 발진티푸스, 콜레라 등

전염병이 발생하여 더욱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켰습니다.

사회적 불안: 기근은 사회 불안을 야기했습니다. 백성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돌았으며,

폭동과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2.3 정부의 대응

구제 활동: 정부는 기근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구제 활동을 펼쳤습니다. 곡물을 나누어주고,

빈민들을 위한 급식소를 운영했습니다.

농업 생산 증대 정책: 정부는 농업 생산 증대를 위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새로운 품종 개발, 관개 시설 확충, 농업 기술 개선 등을 추진했습니다.

 

2.4 기근의 역사적 교훈

조선 시대 기근은 자연재해와 인간의 잘못된 선택이 결합하여 발생하는 재앙의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사회 안전망 강화, 농업 생산 시스템 개선, 기후 변화 대응 등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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