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서울시청 앞 덕수궁에 한 번쯤 가보셨을 겁니다. 덕수궁이 자리한 이곳은 원래
궁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궁궐이 되었는지 그리고
덕수궁 내에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려고 해요.
구한말 근대화와 고종과 덕수궁
1. 근대화를 꿈꾼 개혁가 고종
고종은 개혁을 통해 구본신참(옛 것을 근본으로 하여 새로운 것을 참고한다) 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유교적 이념과 정서를 존중하면서 서구의 새로운 사상과 제도를 절충하여 근대적인 개혁을 하려 했다.
근대화를 꿈꾼 고종의 의지를 잘 보여주는 건물이 덕수궁 내에 있었는데 석조전, 중명전, 정관헌, 돈덕전 등의 서양식 건축물들이 바로 그것이다.
2,덕수궁
덕수궁은 정릉동(지금의 정동)에 있던 조선9대왕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사저에 선조가 임진왜란
당시 행궁(임시거처)으로 사용한 것이 그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피할 곳이 필요했는데요 임시거처로 월산대군의 사저였던
덕수궁에서 잠시 피난 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직후 모두 타버린 궁궐을
중건하기 전, 선조는 이곳을 거처로 사용하였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였죠.
임진왜란 직후, 광해군은 정릉동 행궁이라 부르던 것을 경운궁이라 고쳐 지었고 그 후 고종이
을미사변을 겪고 아관파천 후 이곳으로 오게 되었고 1907년 아들 순종에게 양위한 후
고종은 경운궁에 거처하였는데 순종이 아버지 고종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덕수궁이라
고쳐 지었고 지금까지 덕수궁이라 불리우게 된 것입니다.
덕수궁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간섭에 의해 궁궐의 규모가 축소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많은 건물들이 일제의 공원화 정책에 의해
훼철되었고 위에서 보신 돈덕전과 중명전은 복원된 건물입니다.
중명전은 현재 관람이 가능하나 돈덕전은 9월 중에 공개관람을
시작한다하니 한번 가보시길 추천드려요
석조전은 덕수궁 홈페이지에서 예약하고 전문해설사의 인솔하에 관람이
가능하니 참고하시길 바래요
덕수궁 홈페이지 바로 가기 👉👉👉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와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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