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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야기/근현대(인물과 유적지)

경교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푸름이j 2023. 10. 1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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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요인 사진
임시정부 요인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에 위치한 경교장은 국내에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입니다. 이곳은 백범 김구의 개인 사저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피살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경교장의 역사와 중요성, 복원과 관리 과정, 그리고 현재까지의 역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경교장 이미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사용되었던 경교장의 모습

1. 건축배경

경교장은 1938년에 지어진 건물로, 일제강점기 때 평안북도의 수많은 금광 중 삼성금광으로 벼락부자가 된 친일 기업인 최창학의 개인 소유 자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죽첨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이었죠. 이 건물은 당시의 문화주택 붐에 힘입어 건설되었지만, 최창학은 본인이 바로 뒤에 있는 한옥에서 생활했습니다. 한편, 경교장은 서양문물의 영향을 받아 서구화된 건축양식과 생활습관을 도입하면서 독특한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2. 해방 공간 시절-김구의 사저

1945년 백범 김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중국 상하이에서 귀국하면서 경교장은 김구의 개인 사저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경교'로 변경되었는데, 이는 서대문 근처에 있는 다리 '경구교'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특히 김구와 이승만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이곳은 민족 진영의 집결 장소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이승만의 사저인 이화장과 함께 광복 이후의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신탁통치 반대 집회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민중들

3. 김구 사후

1949626, 김구가 경교장에서 피살당한 후, 이 건물의 소유권은 최창학에게 돌아갔다가 11월에 주한 중화민국 대사관에게 양도되었습니다. 이후에는 미군 특수부대와 임시의료진이 2달 간 이곳을 벙커로 사용했으며, 1956년에는 주한 월남대사에게 대여되어 월남대사관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백범 선생 서거 조문행렬
백범 김구 선생 서거 후 조문행렬

4. 복원과정

경교장은 오랫동안 병원으로 사용되다가 1990년대에 김구의 복권과 근대 건물 철거 문제 등이 논의되면서 복원에 대한 주장들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1996년에 병원 측이 경교장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을 서울시청에 제출했을 때 여론 반발이 일어나 유보되었습니다.

 

병원이된 경교장 사진
병원시절의 경교장

 

그 후 1997년에는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이 복원을 촉구하고, 1999년에는 삼성 측이 경교장을 옮기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의 반발로 이전되지 못했습니다. 2001년에 경교장은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에는 병원에서 경교장 일부를 복원하여 김구 기념실로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5. 현재의 역할

현재 경교장은 근대 역사와 김구의 기념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 전체 복원이 완료되어 무료로 개방되며, 일반인도 관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유주는 여전히 삼성의료재단이며, 서울특별시는 운영만 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기리고 보존하는 중요한 장소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무리

경교장은 귀중한 국내 문화재로서 김구와 근대사의 중요한 장소입니다. 그 역사와 가치를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것은 우리 역사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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