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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이야기

푸름이j 2024. 4. 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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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에서는 괴짜 건축가 가우디의 삶과 작품, 그리고 바르셀로나에 미친 그의 영향에 대해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바르셀로나의 건축을 대표하는 가우디의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예술적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가우디의 삶과 그의 작품들을 통해 예술성과 가우디의 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안토니 가우디, 바르셀로나를 건축하다

 

 

안토니 가우디 사진
안토니 가우디 사진 , 위키백과

 

1. 괴짜 건축가 가우디의 생애

1.1 어린 시절과 자연과의 만남

안토니 가우디는 1852년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레우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또한, 건축에

대한 흥미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아버지가 구리 세공장을 운영했던 영향으로 공간과 구조에 대한 감각을 키웠습니다.

 

1.2 바르셀로나에서의 학업과 초기 활동

1870년 가우디는 바르셀로나로 옮겨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르네상스라는 문화 운동의

중심지였으며, 가우디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독창적인 건축 양식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졸업 후 가우디는 건축가로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초기에는 주로 건축가 호세프 푸치다카르보와 함께 일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카사 칼벳, 엘 카프리치 등의 건축물을 설계하며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1.3 후원자 구엘 백작과의 만남

1878년 가우디는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꿀 만남을 갖습니다. 바로 카탈루냐의 부유한 사업가였던 에우세비오 구엘 백작과의 만남입니다. 구엘 백작은 가우디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의 후원자가 되어 주었으며, 이를 통해 가우디는 자신의 독창적인 건축 양식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됩니다.

 

2. 가우디의 주요 작품 및 특징

2.1 가우디의 주요 작품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가우디의 대표작으로, 아직 미완성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사진자료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대성당)의 전경사진, 네이버 검색

 

 

 

구엘 공원: 바르셀로나 시내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조성된 공원입니다.

구엘공원
구엘공원의 전경, 네이버 검색

 

 

카사 밀라: 파도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관의 건물입니다.

카사밀라
카사밀라 전경사진, 네이버검색

 

 

카사 바트요: 해골 모양의 발코니로 유명한 건물입니다.

카사바트요
카사바트요전경사진, 네이버검색

 

 

구엘 궁전: 구엘 백작의 저택으로,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구엘궁전
구엘궁전 전경사진, 네이버 검색

 

 

2.2 가우디의 예술적 특징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유기적인 형태: 곡선, 나선형, 굴곡진 형태를 활용

화려한 색채와 장식: 타일, , 유리 조각 등 다양한 재료 사용

독특한 건축 양식: 기존 건축 양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디자인

 

3. 가우디의 영향 및 유산

3.1 가우디의 영향

가우디의 작품들은 바르셀로나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고, 도시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그의 독창적인 건축 양식은 전 세계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3.2 가우디의 유산

가우디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건축가이며, 그의 작품들은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그의 독창적인 예술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4. 가우디의 비극적인 죽음

1918년부터는 자신이 평생동안 건축해온 성가정 (성가족) 대성당 건설에 매진했지만 재정 문제로 인해 끝을 보지 못하고 192667일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지나가던 노면 전차에 부딪혀 치명상을 당했다. 그러나 운전수는 지저분한 노숙인으로 생각하고 그를 길 옆에 팽개치고 노면 전차를 몰고 가버렸다. 사람들이 병원으로 데려가고자 택시를 찾았지만 역시 노숙인으로 생각한 기사들은 그냥 지나쳐 3번의 승차 거부 끝에 4번째로 잡은 택시 운전수가 겨우 운전했지만 병원도 2곳이나 진료 거부를 당해 빈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무상 병원에 놔두고 가버렸다고 한다.

 

문제는 신분을 증명하는 것인데 병원에서 방치된 채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가우디는 병원 간호사에게 이름을 말하자 병원 관계자들은 경악을 하며 가우디의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급히 연락했다고 한다.

 

서둘러 달려온 그들이 다른 병원으로 옮기자고 말했지만 가우디는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이 거지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하라. 그리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다"라며 그대로 빈민 병원에 남았고 결국 1926610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죽게 만든 노면 전차 운전수는 파직과 동시에 , 승차를 거부한 택시 운전수 3명도 불구속 입건되었다. 결국 택시 운전수 3명과 그의 치료를 거부했던 병원은 막대한 배상금을 가우디 유족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장례식은 1926613일 많은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고, 유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지하 묘지에 안장되었다.

 

장례식
안토니 가우디의 장례식 사진  1926년 6월 12일,나무위키

 

 

안토니 가우디의 묘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지하 묘지의 안토니 가우디의 묘비 사진, 나무위키

 

5. 안토니 가우디 묘지의 수난

세상을 떠나고 불과 10년이 지난 1936,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을 때 성가정 대성당의 지하묘지가 과격주의자들에

의해 방화되었고 가우디의 무덤도 훼손될 위기에 처했으나 가우디의 제자로 일한 적이 있는 만화가 리카르드 오피소(Ricard Opisso, 1880~1966)가 간신히 막았다. 하지만 오피소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 의해 무덤

안에 공화파의 무기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파헤쳐지고 만다. 그나마 관뚜껑까지 뜯겨나가는 참극은 면했지만 무덤은 파헤쳐진 그대로 방치되었으며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군대가 1939년 바르셀로나를 점령한 후에야 비로소 무덤을 다시 봉인할 수 있었다.

 

 

 

참고자료

 스페인 명소 사그라다파밀리아 144년 걸려 2026년 완공 , 연합뉴스 3월26일자 기사

 

스페인 명소 사그라다파밀리아 144년 걸려 2026년 완공 | 연합뉴스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바르셀로나의 대표적 건축물 성가정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이 2026...

ww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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